모니터로 애도한 아버지의 죽음…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김희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6일 1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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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자전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산 사람에게 던진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그저 운이 나빴던 거라기엔 너무 가혹한 결말 아닌가? 그러나 남겨진 확실한 건 아버지가 차고 있던 GPS 시계의 행적과 심박 수 데이터뿐이다.

김희천 작가가 13일 서울 마포구 동료 작가들과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모니터에 떠 있는 것은 김희천의 2019년 작품 ‘탱크’의 한 장면이다. 사진 김혁, 에르메스재단 제공.
김희천 작가가 13일 서울 마포구 동료 작가들과 함께 사용하는 작업실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모니터에 떠 있는 것은 김희천의 2019년 작품 ‘탱크’의 한 장면이다. 사진 김혁, 에르메스재단 제공.


김희천 작가(34)는 영상 작품 ‘바벨’(2015)에서 GPS 시계 속 데이터를 통해 아버지의 마지막을 추적했다. 이 작품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2018), 아트선재센터(2019)에서 개인전을 열고 국내외 비엔날레에 다수 참가했으며, 최근에는 제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종 수상자로 선정됐다. 13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 모니터로 애도하는 아버지의 죽음

김희천 작가의 2015년 작품 ‘바벨’의 한 장면. 에르메스재단 제공.


작품 ‘바벨’에는 구글 지도와 3D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서울의 모습이 나와 게임을 연상케 한다. 화면 속 마우스 포인터는 무언가를 간절히 움켜쥐듯 주먹 모양으로 꼼지락거리기도 해 컴퓨터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하다. 김희천은 “누군가에겐 모니터로 애도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남은 게 그것 밖에 없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남긴 가장 자세한 게 데이터였어요. 당시에는 애도보다 그냥 데이터를 보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다 또래 작가들이 만든 신생 공간 ‘반지하 B½F’에 작품을 내면서 그 경험을 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영상을 만들려 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살이 붙었다. 결과물은 간단한 해결책이든, 어려운 문제든 학교 숙제부터 병원에 가야할 증상까지 자판을 두들겨 검색부터 하고 보며, 직접 묻지는 못해 ‘전화 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80년대 이후 출생 세대의 자화상이 됐다. 죽음에 관한 복잡한 질문 앞에서도 이들은 숫자와 데이터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에르메스상 심사위원단은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의 자아 인식을 이슈로 다뤄 놀라운 작업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강정석 작가가 만든 비디오 스크리닝 프로그램 ‘비디오 릴레이 탄산’에서 다른 또래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우리가 정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구나, 해외 청소년들이 미술관 등에서 문화활동을 할 때 우리는 PC방에 다녔구나 싶었어요. 또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핸드폰만 보고 있기에 도대체 ‘스크린’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죠.”

● 난해한 영상 대신 서사로 몰입감 살려

김희천 작가의 2017년 작품 ‘홈’의 한 장면. 에르메스재단 제공.


‘바벨’ 이후 그의 작업은 레이싱 게임, 인터넷 방송,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소재로 변주됐다. 김희천 만의 독특한 포인트는 개인적 경험이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라는 점이다. “글에서 읽은 것보다 직접 경험해서 아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느낍니다. 그래야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지 않고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는 연결 고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문경원·전준호 작가가 유명 배우가 출연한 고화질의 화면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김희천은 드라마틱한 서사와 문학적 대사로 관객을 붙잡는다. 사실 영상 작품은 미술 전시에서 관객에게 선호되진 않는다. 다양한 작품이 걸린 곳 오랜 시간 한 작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그는 “관객이 작품을 다 보고 끝난 것을 아쉬워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작가의 수상 기념전은 2024년 하반기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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