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더 이상 과거사에 매여 살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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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한(恨)서린 경험은 들을 때마다 아프고 죄스럽다. 국민학교 때 반장이었던 양금덕 할머니(94)는 중학교에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가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일했다. 월급은커녕 사과도 못 받은 것이 원통해 1990년대부터 일본서 소송을 냈지만 줄줄이 패소했다.

2023년 3월 6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운데)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내 나라에선 다르겠지 싶어 할머니는 우리 사법부에 소송을 냈을 것이다. 2012년 대법원 김능환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일본기업에 손해배상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국가 미래를 흔들 수도 있는 원폭이었다. 여기서 판결자체를 따지진 않겠다(끝도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전임 문재인 정부는 그 여파를 방치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 “외교와 안보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은 분명 고뇌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수행해야 할 외교와 안보, 국방, 이 모든 정책의 책임은 내게 있다”고 참모진에게 말했다고 한다(그걸 왜 국민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 피고기업들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에 흔쾌히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이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 바쁜 독자를 위해 계속 이어질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① 현실적으로 다른 방책이 없다. 전쟁 빼고

  • ②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22년 “한일협력”을 말했다

  • ③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

  • ④ 과거에 매달리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

  • ⑤ 손배소송 돕는 일본단체들은 공산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 ⑥ 이제 한일관계-한미일 공조는 굳건해질 것이다

  • ⑦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어떨까


● 일본 총리와 일왕 지금까지 53번 사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건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직접 사과와 배상이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기업)이고 국내에 있지 않다. 그쪽에선 ‘죽어도 못한다’는데 모가지라도 끌고 와 강제 실현할 방법은…없다. 그래서 전임 문재인 정권은 무책임하게 외면했던 거다.

일본 정부의 사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15년 한일 정부가 어렵게 매듭지은 위안부 피해자 합의 당시 외상(外相)이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중략)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합니다”라고 일본 정부를 대표해 밝혔다. 그랬던 그에게 또 사과하라는 건 온당한가. 서울시립대 이창위 교수가 작년 말 쓴 책 ‘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에 따르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부터 2018년 아키히토 일왕까지 일본 총리와 일왕은 53번이나 한국에 사과를 했다.

2015년 12월 일본군(軍) 위안부 문제 담판을 위해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왼쪽)이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악수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역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역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이었다.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과 ‘피징용자의 손해보상’도 포함된 건 물론이다. 하지만 ‘빨갱이’의 기원이 일본 제국주의라는 문 전 대통령에게는 공산주의자보다 일본이 더 증오스러웠던 모양이다.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합의를 뒤집었던 그는 대법원 폭탄 판결이 나오고, 일본이 무역보복으로 맞서자 2019년 8월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 문재인도 “한일협력은 미래 위한 책무”
그 여파로 한미일 공조가 깨져 우리 안보가 위태롭든 말든 ‘신한반도체제’만 성립되면 문파좌파는 행복했을 거다. 그러나 북조선에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욕이나 퍼부을 뿐 호응이 없자 문 전 대통령은 2022년 3.1절 기념사에서 다늦게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한일양국의 협력은 미래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라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송혜교는 이럴 때를 위해 이런 대사를 남긴 바 있다. “그 입을 찢어버려야 하나.”

2022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죽어도 일본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겠다면 무리수가 있긴 하다.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은 작년 말 대법원 앞에서 미쓰비시 국내자산을 압류 매각하는 판결을 촉구하며 시위성 회견을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1인당 2억원에 달하는 정신적 위자료를 속히 받게 해달라는 거다. 만일 ‘김명수 대법원’이 그런 국제법에 반(反)하는 결론을 또 내놓는다면…한일간 전쟁까진 아니어도 외교파탄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 어떠냐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2년 후 외환 위기가 닥치자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꼭 보복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안보협력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도 살만큼 살게 된 나라다. 언제까지 치사하게 일본에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는가. 강제징용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는 서럽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당시 혜택 받았던 기업들이 나서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X팔림을 느끼고 깊이 반성한 일본과 차원 높은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 독일도 식민 지배를 배상하진 않았다
물론 우리가 당했던 혹독한 일본 식민 지배는 TV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근대화에 앞섰다는 이유로 비(非)백인으로선 유일하게 식민제국을 경영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국’을 자처했다. 아시아에서 문명화를 하겠다며 잘난척했던 그들의 가장 만만한 희생자가 우리나라였다.

독일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처절하게 패한 일본은 그래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에서도 독일과 종종 비교된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태인 희생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1990년대 들어 나치 독일에 강제 동원된 외국인 희생자들의 문제가 불거지자 독일 의회는 2000년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설립 법을 통과시켜 정부와 기업 부담으로 100여개 국가166만 명의 피해자에게 43억7000만 유로를 지급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 동아일보DB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 동아일보DB
그러나 이것이 독일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나치 만행에 대한 법적 책임도 아니고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을 독일은 유독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이탈리아가 2009년 리비아 식민 지배를 사과하고 배상 명목으로 투자를 합의한 정도랄까). 2차 대전 종전 당시 독일과 일본 등 패전국은 물론이고 미국 영국 등 승전국조차 식민지를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 미국은 과거 아닌 미래를 중시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종결지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전후 국제질서를 결정한 다국간 합의다. 이 조약 14조엔 전쟁 배상에 대한 내용은 있어도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 조항은 없다. 조약 체결 당시 식민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은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이석우 인하대 로스쿨 교수 2022년 논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과 식민지 문제 인식’).

일본이 치러야 할 전쟁 배상 조항도 매우 관대하다. 일본은 배상을 지불할 자원이 없다고 미국이 시사해 놔서 일본과 교전한 48개 연합국 중 구미 열강을 포함한 45개국은 대일 배상을 포기했다. 때는 1951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동맹으로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중시된 까닭이다. 결국 청구권 포기 없이 1960년까지 일본에 배상을 받아낸 나라는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4곳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이 조약을 맺는 회담에 참여도 못했다. 1950년 5월 초안을 만들 때까지는 참가 및 서명국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1951년 5월 미국에 보낸 답신서에서 ‘임시정부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부터 일본과 교전상태에 있었으므로 연합국 자격이 있고, 재일 한국인은 연합국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대마도와 맥아더 라인까지 요구하는 등 과하고 불합리한 주장을 했다.

미국은 공산침략에 맞서는 자유세계의 최전선이라는 한국의 현재적 가치를 중시했지만 한국은 임정의 독립투쟁 등 과거의 가치만 강조한 것이다(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2020년 논문 ‘한국의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참가문제와 배제과정’). 결론은 한국 배제였다. 과거에 스토커처럼 집착하는 과오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순 없지 않은가.

● 식민 지배 받았던 대만은 청구권 포기
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이 전후배상 및 청구권 지불을 자신들의 부당한 침략과 지배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인식 없이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거다. 오히려 일본은 은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경제협력이나 원조를 제공해왔다(이원덕 국민대 교수 2007년 논문 ‘일본의 전후처리 외교연구’).

가난했고, 원조자금이 아쉬웠던 우리나라는 유상 2억 달러, 무상 3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받기로 하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제반 협정을 맺었다. 기본조약 전문에 과거사 청산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바탕으로 한 1965년 체제의 한계다. 그러나 14년 간 끈질긴 외교전쟁을 이겨냈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종자돈이 됐다고 이 교수는 평가한다. 경제발전 가치가 우선시됐기에 피해자 구제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와 유이(唯二)하게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던 중화민국은 그런 돈을 받지 않았다. 1952년 일화강화조약 때 ‘일본국민에 대한 관대와 선의의 표징으로’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다만 1974년 대만 출신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서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나는 일본병이다” 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덕분에 대만 출신 일본군과 유족에게 위로금 200만 엔(약 3000만 원)을 지급하는 법률이 1987년 제정됐다). 대만보다 통 크고 싶었던 중국도 1972년 일본과 수교하며 배상 포기를 선언했다.

● 피해자돕기 일본 측 단체, 공산당과 연관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냐고. 언제까지 우리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 그 돈 내놓으라고 외쳐야 하느냐고. 이제는 우리가 우리 피해자들을 지원하면 안 되느냐고.

특히 일본서 반드시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징용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 측 단체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2018년 결성된 단체들은 ‘일본의 한국병합은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로 원천무효’라는 천사 같은 소리를 하는 세력과 가깝다. 주로 일본 공산당계, 구 일본사회당계에 뿌리를 둔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과 연계됐던 이들이 1965년 한일협정도 쌍수들고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일조약은 본질적으로 한일 군사동맹이어서 남북분열을 고정시켜 (북한 주도) 통일을 방해한다는 거다. 정말 믿고 싶진 않지만 죽창가를 부르던 과거 집권세력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찾아보면 어떤가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지 1시간 쯤 지난 미국시간 5일 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그만큼 한일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한미일 공조 회복이 긴요했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신냉전구도가 공고해지면서 향후 한반도와 대만해협 위기는 한미일 군사공조와 경제안보협력 없이는 헤쳐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결단을 내린 대통령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에게, 그리고 국민에게도 좀더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7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은 세계 전체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런 간접화법으론 국민 가슴에 와닿을 수 없다.

한일협정 체결 뒤 박정희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었다. “한일협정의 결과가 굴욕적이니 저자세니…비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일이 있다면, 이번에 체결된 협정은 치욕적인 제2의 을사조약이 된다”고 박 대통령은 둥둥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처럼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다(물론 반대시위가 격렬했고 대통령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늘의 한국이 증명한다).

윤미향 같은 피해자 대변인격에게 마냥 맡겨둘 순 없다. 이번엔 대통령이 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이런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준다면 설령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해 가슴치던 피해자들이 그간의 한을 조금은 풀 수 있을 듯하다. 국민도 모처럼 대통령(부인)과 통하는 느낌을 가지는 건 물론이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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