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든 작가, 수영복 입은 작가…갤러리에 뜬 80대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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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3월 4일 0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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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80대 작가들의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이들은 오늘도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깎고, 삼각 수영복을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고 새총을 쏘면서 “예술은 비싼 싸구려이다!”라고 외친다.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화동에 위치한 백아트갤러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성능경 작가는 “복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시고”라는 말을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주문처럼 외웠다. 이날은 성능경의 개인전 오프닝에 맞춰 단 한 번의 그의 퍼포먼스가 열리는 날이었다.

가족과 지인, 도움받은 사람들을 소개한 성능경은 “내 나이가 올해 80(1944년생)이요”라고 말하며 퍼포먼스의 시작을 알렸다. 권투선수가 입는 가운부터 하나씩 벗으니 걸친 것이라곤 검은색 삼각 수영복뿐인 그. 라이브 재즈 연주를 배경 삼아 부채에 적은 제문(祭文)을 낭독하고, 훌라후프를 조립해 돌리면서 새총으로 탁구공을 관객에게 쏜다.

단 한 번의 퍼포먼스였지만 울림은 컸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55년간 작가 생활을 했지만 그의 개인전 횟수는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올해에만 개인전과 그룹전을 포함해 최소 다섯 번의 전시에 나선다. 여기에는 9월 예정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전시가 포함된다. 인고의 세월이 퍼포먼스에 녹아 관객에게 날아든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성능경의 1970~1980년대 초반의 대표 사진 작품들과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는 ‘밑 그림’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성능경의 작품은 ‘에디션’이 없는 오리지널이다. 성능경은 디지털 기술로 스캔을 받아 에디션을 생산하는 것을 ‘오리지널’이라고 보지 않아 거부한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1970년대 작품은 갤러리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성능경이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멀었던 이유이다. 성능경은 2009년 생전 처음으로 아크로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

퍼포머로서 ‘품바’ 성능경은 작업실에서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계원예고에서 29년간 학생을 가르치며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자식 넷을 키우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줬다. 김남수 평론가는 이런 그를 두고 ‘저평가 우량주’라고 했다.

성능경의 ‘아무것도 아닌듯…성능경의 예술 행각’은 오는 4월30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한국 나이로 89세(1935년생)인 김윤신은 인생 대부분을 프랑스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외국에서 보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그가 매진했던 것은 오직 ‘조각’. 지금도 그는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깎는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오는 5월7일까지 김윤신 개인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열린다. 회고전이라고까지 부르긴 어렵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규모 전시다. 특히, 김윤신을 조명하는 첫 국공립 미술관 개인전이라서 의미가 있다.

김윤신은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이다. 1970년대 선배 작가들과 함께 한국여류조각가회 설립을 주도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해 1959년 졸업하고 1964년 프랑스로 유학해 공부했다. 1969년 귀국해 10여년간 국내서 생활하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정착한다.

아르헨티나로 떠나기 전인 1978년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을 정립했다. 음과 양이 온전히 합해져야 하나가 되고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그 분할은 또 다른 완전한 존재의 ‘하나’가 된다는 깨달음이다.

김윤신은 생애 전반에 걸쳐 나무조각 위주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조각뿐만 아니라 김윤신이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탐구했던 석조각을 만날 수 있단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또 나무와 돌 등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며 재료가 지닌 본래의 속성을 최대한 드러냄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희미해진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근원적 감각을 일깨운다.

김윤신은 보다 가벼운 재료나 쉬운 방식의 조각 방법을 고려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돌이나 나무가 무겁다고 가벼운 재료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3D 스캐너 활동도 마찬가지다”라며 “이제 나의 나라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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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트서울서 열리는 성능경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성능경의 예술 행각’ 포스터. (백아트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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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트 서울서 열리고 있는 성능경 작가의 개인전 모습. (백아트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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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성능경이 지난 2월22일 전시 오프닝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2023.2.2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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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작가의 작업 모습.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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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의 목조각 작품 ‘합이합일 분이분일’.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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