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 시절부터 스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저자는 총 4권으로 구성된 ‘설산 시리즈’를 펴냈다. 그중 ‘화이트 러시’는 ‘백은의 잭’을 잇는 두 번째 작품이다. 2013년 현지에서 출간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리며 인기를 모았다. 시리즈는 작중 등장인물인 구조요원 네즈와 스노보드 선수 지아키를 공통분모로 ‘눈보라 체이스’, ‘연애의 행방’으로 이어진다.
추리물로서 ‘화이트 러시’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용의자 X의 헌신’, ‘가면산장 살인사건’ 등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크다. 치밀한 추론 과정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개인의 양심과 보신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며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결말의 완성도 역시 떨어지는 편이다. 감동을 기대한 듯한 반전은 앞서 쌓아올린 서사와 이질감을 빚어 다소 생뚱맞기까지 하다.
스키어들의 눈에 담길 아름다운 설경을 묘사한 문장들도 감상의 묘미다. ‘온통 은빛 세상’에 둘러싸인 구리바야시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스키장을 활보한다. 높다랗게 자란 너도밤나무 사이로 보드라운 파우더 스노가 흩날리는 대목은 당장이라도 눈밭을 거닐고 싶게 만든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