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고립과 고독 사이의 일주일[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2-12-07 03:00업데이트 2022-12-07 03:23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코로나 걸려 가족과 떨어져 집에서 홀로 보내
일상의 긴장에서 놓여나 몸과 마음 느낀 시간
일 잠시 멈춘 느슨함, 삶에 꼭 필요한 것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여태껏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었다. 병원을 찾을 때만 해도 열이 전혀 없어 식도염이겠거니 여겼지만 결과는 코로나였고 의사는 놀라는 내게 “처음이세요?” 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의사는 요즘은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이 병원을 찾는다고 설명했고, 자신은 환자를 돌보다 보니 세 번 코로나를 겪었다고 알려주었다. 병세는 경증이라 괜찮을 듯하지만 다른 가족과 분리 생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울 거라고. 그렇게 7일간의 고립이 시작되었다.

PCR 검사로 음성이 나온 가족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고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 어떻게 혼자 두고 나가냐며 걱정하던 가족은 나중에는 취미로 삼는 기타까지 살뜰하게 챙겨 집을 나섰다. 회사에 나가야 하니까 전파력이 강한 며칠이라도 아예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는데도 현관문이 텅 하고 닫히자 앞으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것, 일상적으로 진행되던 패턴에서 나만 열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났다.

새로 책을 내고 나서 작가가 가장 부지런히 하는 일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기자들을 만나고 나중에는 독자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새로 한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에 내가 할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최근에 연작소설집을 내고 책을 알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 보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던 나는 딱 그 타이밍에 시작된 격리 생활로 작은 문턱에 걸려 넘어진 기분이었다. 통증이 시작된 가운데 나는 대체 어디서 옮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했다. 왜 뭐 좀 해보려고 하면 꼭 이렇게 태클이 들어올까 하는 영양가 없는 생각을,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바로 씻지 않고 소파에 누워 시간을 보냈던 게으른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을. 정말 이 고립이 그런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그 정도로 낙담할 의미인지도 잘 모르면서 떠오르는 대로 불평한 것이다.

하지만 격리 생활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그 일주일을 무척 특별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그럴 수 없었지만 사실 신간을 내고 나서 내가 으레 했던 과정 중 하나는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되도록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서 혼자 며칠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것. 책을 내기까지 내 안에서 반복적으로 우글거리던 말들을 비우고 돌아와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 그런데 격리 생활이라는 통제선 하나가 일상에 그어지자 나는 떠나지 않아도 완전히 다른 세계에 머물게 되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고 병세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을 하며 하루를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세계. 그렇게 완전히 이완되어 시간을 보내던 나는 그동안 내가 나를 얼마나 긴장되고 숨 가쁜 스케줄 속으로 몰아넣었던가를 뼛속 깊이 실감했다. 신간을 내자마자 내가 오전에 카페에 나가서 한 일은 그다음에 쓸 작품들에 대한 자료 조사였기 때문이다.

경증이라고 해도 목의 통증, 근육통, 콧물 같은 증세들은 의사가 예상한 대로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약이 독했는지 위 통증이 심했고 입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무리 경미해도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할 수가 없으니까 책도 읽을 수 없었고 영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로 하게 되는 건 일상의 긴장에서 놓여나는 몸과 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시간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휴가가 되면 휴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오히려 촘촘한 계획을 짜고 거기에 맞춰 새로운 긴장을 유발시키곤 했으니까. 휴가도 그럴진대 평소의 생활은 어땠을까. 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멈추고 취소되면서 느끼게 된 지금의 이 느슨함이야말로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본당 신부님과 나눈 대화에서 모든 이들에게는 ‘광야’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성경’ 속 요한에서부터 현대의 모든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척박하고 고요한 환경에 나 자신을 맡긴 채 보내는 광야에서의 시간이 자기 수련과 갱신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광야란 일단 찾기조차 힘든 공간이니 어디를 가서 그런 감행을 할 수는 없고 그럼에도 일상에서 정신적 광야를 느껴보려는 노력은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7일간의 고립과 고독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의미였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