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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신조어는 시대의 거울… ‘몰라도 되는 말’은 없다

입력 2022-12-03 03:00업데이트 2022-12-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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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트렌드/정유라 지음/340쪽·1만6800원·인플루엔셜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유행이 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어의 언급량과 증감률을 파악한 저자는 혈액형이란 단어가 왜 요즘은
 덜 쓰이는지, ‘취향’이란 단어는 왜 부쩍 많이 쓰이는지 등 새로운 언어 사용의 흐름과 이에 대한 분석을 책에 담았다. 
인플루엔셜 제공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도 유행이 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어의 언급량과 증감률을 파악한 저자는 혈액형이란 단어가 왜 요즘은 덜 쓰이는지, ‘취향’이란 단어는 왜 부쩍 많이 쓰이는지 등 새로운 언어 사용의 흐름과 이에 대한 분석을 책에 담았다. 인플루엔셜 제공
9월 방탄소년단(BTS) 팬들 사이에는 리더인 RM(본명 김남준)을 부르는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과 ‘미친 자’를 합친 ‘헤친자’라는 표현이다. RM이 라이브 방송에서 이 영화를 5번 봤다고 언급한 데다, 영화 장면과 어울리는 와인 시음 행사에도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특정 대상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쏟는 이들을 ‘오타쿠’라며 폄하하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몰입러’ ‘-친자’ ‘처돌이’라며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젊은 세대들이 즐겨 쓰는 ‘디지털어체’를 “나와 다른 세대의 언어”라고 치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디지털 언어는 현 시대의 새로운 언어이며, 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얘기한다.

일단 디지털어체의 특징으로는 짧게 줄여 말하기를 꼽을 수 있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버카’(버스 카드)처럼 많은 단어가 축약돼 사용된다. 그렇다 보니 이제 줄임말은 누군가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온라인 거래를 자주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택포’(택배비 포함), ‘무배’(무료 배송)가 일상적인 용어로 쓰인다.

축약어는 특정한 상황이나 인물 묘사에 적절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답을 듣기 위해서 상대방을 떠보는 사람’이라고 길게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단어 하나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몇몇 디지털어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경기 침체와 경제적 불평등이 화두가 되면서 돈과 관련된 신조어가 많다. 2017년 이후 화제가 됐던 ‘시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푼다는 의미를 지녔다. 지난해부터 ‘돈쭐내다’는 신조어가 인기다. 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긍정적인 뜻이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이 일자 시청자들이 광고주에게 드라마 지원 철회를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기업의 제품을 적극 구매하자고 독려한 것이 ‘돈쭐내다’는 표현의 시초가 됐다.

온라인에서 언급이 늘어난 단어를 통해 MZ세대의 특성도 엿볼 수 있다. 요즘 증가세가 두드러진 단어는 ‘취향’이라고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상을 공개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생기자, MZ세대는 자신의 취향을 전도유망한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이나 ‘취저’(취향 저격) 같은 단어들이 보편화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란 분석이다.



“세상에 몰라도 되는 단어는 없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언어 습득 능력을 키우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언한다. 첫째, 고유명사를 많이 익히면 도움이 된다. 서울 예술의전당을 지은 건축가는 김석철,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아니 에르노 등을 정확하게 외우는 것이다. 사람과 사물을 ‘그’ ‘그거’가 아니라 명확한 언어로 부르는 습관은 새로운 언어를 흡수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하나는 평범한 일반명사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보길 추천한다. 요즘 커피 애호가들은 그냥 커피 원두가 아니라 에티오피아 내추럴 원두를 선호한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구체적인 표현을 쓰기 시작하면 다양한 언어를 받아들이는 힘을 얻는다고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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