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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룩셈부르크 왕세자-한국인 노병 ‘6·25 보은 만남’

입력 2022-11-30 03:00업데이트 2022-11-30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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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룩셈부르크군 배속된 노병
“참전용사들 한국 위한 희생 감사”
왕세자도 감사 표하며 선물 전달
한국을 방문한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왕세자(왼쪽)가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6·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비를 참배한 뒤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함께 싸운 참전용사 김성수 옹(오른쪽)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뉴스1한국을 방문한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왕세자(왼쪽)가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아 6·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비를 참배한 뒤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함께 싸운 참전용사 김성수 옹(오른쪽)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뉴스1
한국을 방문 중인 기욤 장 조제프 마리 룩셈부르크 왕세자가 6·25전쟁 당시 룩셈부르크군에 배속돼 싸웠던 한국인 참전용사를 만났다. 기욤 왕세자는 앙리 룩셈부르크 대공(大公)의 아들로 차기 왕위 계승 서열 1위다.

기욤 왕세자는 2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6·25전쟁 룩셈부르크 참전비를 참배했다. 이 자리엔 전쟁 당시 룩셈부르크 소대에 배속됐던 참전유공자 김성수 옹(92·서울 은평구)도 참석해 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김 옹은 벨기에 대대 A중대 룩셈부르크 소대 소속으로 1951∼1953년 전선을 누볐다. 김 옹은 기욤 왕세자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룩셈부르크 소대 표식이 달린 베레모를 보여주면서 “6·25전쟁 때 포병 관측병으로 뽑혀서 룩셈부르크 부대에 배속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18년 전 룩셈부르크를 방문해 앙리 대공을 직접 만났다”고 밝히자 기욤 왕세자가 놀란 표정으로 “정말 의미 있고 감동적”이라고 답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기욤 왕세자는 김 옹에게 감사 메시지와 함께 룩셈부르크 유명 화가의 그림을 담은 도자기를 선물로 증정했다. 기욤 왕세자는 “현재 한국에 대사관이 아닌 대표부만 설치된 것을 내년 정전 70주년을 맞아 대사관을 설치하는 등 의미 있는 정전 70주년 사업을 한국과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 처장은 “6·25전쟁은 룩셈부르크가 자국 군인을 해외 전쟁에 파병한 유일한 군사개입 사례”라며 “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의 공헌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룩셈부르크는 6·25전쟁 당시 인구 20여만 명에 불과했지만 1951년 1월 31일∼8월 25일 제1차 분견대와 1952년 3월 28일∼1953년 1월 7일 제2차 분견대 등 총인원 100명의 전투병을 참전시켰다. 22개 참전국 중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것.

룩셈부르크는 1950년 10월 1일 지원병 48명으로 1개 소대를 편성해 벨기에군 대대 A중대에 편입시켜 참전했다. 이렇게 편성된 벨기에-룩셈부르크군 대대(Bel-Lux 대대)는 한국 지형과 유사한 곳에서 훈련을 마치고 12월 18일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출발해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상륙했다. 룩셈부르크군은 학당리 전투와 잣골 전투(지금의 철원)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2명이 전사하고 13명이 다쳤다. 현재 6명의 룩셈부르크 참전용사가 생존해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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