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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부는 살아 돌아왔지만[오늘과 내일/우경임]

입력 2022-11-29 03:00업데이트 2022-11-2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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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중대재해법으론 산재 예방 한계
경영자 처벌로 되레 쉬운 면죄부
우경임 논설위원우경임 논설위원
최근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생존 광부 박정하 씨를 만났다. 그가 일했던 아연광산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3곳에 도급을 주고 있다. 광산업에선 오래된 관행인 ‘도급제 막장’이다. 박 씨는 “사고 위험이 워낙 크다.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가고 중대재해법 대상이 되기 쉬우니 쪼개서 하청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윤은 적지만 사고 위험은 큰 일터, 이런 곳에서 하청과 재하청이 일어난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서 일하려는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광부처럼 노동시장의 약자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중대재해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사망 사고와 같은 중대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경영자를 1년 이상 징역 등에 처하거나, 법인에 5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이 효과가 있었다면 박 씨가 당한 매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국에서 산재 사망사고 483건이 발생해 5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502명)에 비해 오히려 늘었다.

날림 입법의 당연한 귀결이라 본다. 2021년 1월 국회가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키기까지는 고작 보름이 걸렸다.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모 씨(19),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24), 광주 재활용처리업체 김재순 씨(25)의 잇단 사망으로 앳된 청춘을 갈아 넣는 노동 환경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다. 국회 속기록에는 단 이틀 만에 정부 합의안을 만들어 오라는 호통도, “국민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부실한 심사를 우려하는 발언도 모두 남아 있다. 여론을 달래려던 국회는 입법을 밀어붙였다.

처벌의 상한이 아니라 하한을 명시한 것은 반드시 감옥에 보내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입법 속도전으로 모호한 규정이 남발된 데서 생겼다. 경영자의 공포를 노린 로펌이 대거 등판했고 고용부 퇴직 공무원의 취업 시장도 열렸다. 무서운 형벌로 경영자를 위협해 산재를 막자고 했다면 적어도 처벌받는 경영자는 누구인지, 안전·보건 의무는 무엇인지 명확히 했어야 한다.

더욱이 산재 사망사고의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이들 사업장에 대한 적용은 4년 유예됐다. 과잉입법이 우려돼서다. 50인 미만 사업장서 산재가 발생하면 99% 이상 경영자가 기존 법으로 이미 처벌받고 있다. 처벌만으로 산재가 줄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조성일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저서 ‘아픔을 딛고 안전 사회로’에서 중대재해법이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있다는 설명은 사실상 거짓말이라고 했다.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산재 처리비용이 예방비용을 넘어서도록 해야 한다. 경영책임자의 징역만으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소 비율이 낮은 데다 재판에 가더라도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사망 사고만 나지 않으면, 책임을 다했다는 서류만 있으면 피해갈 수도 있다. 이 비용이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싼 것은 물론이다.





박 씨가 일하던 광산에는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광산안전법 위반 혐의, 고용부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한다. 요란하게 사후약방문을 쓰는 동안 박 씨의 동료들은 생계가 막막해졌다. 그는 “동료들은 배운 일이 광산일밖에 없어서, 조사가 신속하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이 경영자 안위보다 뒷전으로 밀려나는 중대재해법, 손봐야 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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