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애정 없던 ‘황제’, 베토벤의 유토피아로 다시 새겼죠”

  • 뉴시스
  • 입력 2022년 11월 28일 14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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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류에 (코로나 등)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매일 방안에서 연습하면서 베토벤의 ‘황제’가 다시 보였어요. 자유롭고 화려한 곡이 아니라 베토벤이 꿈꾸는 유토피아나 그가 바라본 우주 같은 느낌이었죠.”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으로 화제를 모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실황 앨범을 냈다. 지난달 8일 지휘자 홍석원이 이끄는 광주시립교향악단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 올랐던 공연이다.

앨범엔 임윤찬이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담겼다. 애도의 의미를 담은 작곡가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와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도 포함됐다. 앙코르로는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의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 3곡이 수록됐다.

임윤찬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이상하게 베토벤의 ‘황제’엔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이 곡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황제’를 준비하면서 베토벤이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쓴 유서가 유독 떠올랐다고 했다. 1802년 두 동생에게 남긴 편지로, 그가 사망한 후인 1827년에 발견됐다.
“베토벤 협주곡 5번과 3번을 연주할 때 항상 마음속에 그 유서가 떠올라요. 오랫동안 고민해봤는데, 그 글은 굉장한 힘이 있죠. 죽으려는 이의 글이 아니라 베토벤 자신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죠.”

홍석원 지휘자는 특히 임윤찬이 연주한 ‘황제’의 2악장이 눈물 날 정도로 애절했다고 전했다. “다양한 피아니스트와 ‘황제’ 공연을 많이 했지만, 색다른 베토벤을 들었다”고 했다.

“저는 아름답고 희망에 찬 음악으로 연주해왔는데, 이번에 슬픔을 느꼈어요. 작년에 라흐마니노프를 협연했을 땐 10대 청년의 질풍노도 같은 엄청난 에너지와 파워를 느꼈고, 사실 이번에도 힘 있는 ‘황제’를 예상했어요. 그런데 색깔을 확 바꿔왔죠. 항상 변할 수 있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연주가 모두 설득력 있어요. 천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이들의 첫 만남은 지난해 광주시향의 송년음악회였다. 임윤찬은 “첫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좋아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처럼, 광주시향이 제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녹음을 제의받았을 때 기쁘게 수락했다”고 돌아봤다.
스튜디오가 아닌 공연 실황인 만큼 그날, 그곳의 관객들과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했다. 임윤찬은 “라이브 앨범은 음악의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 좋다. 관객과 음악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그대로 음반으로 나온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솔로 음반을 아직 내지 않은 그는 “하고 싶은 곡이 너무 많다”며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고 웃었다. “작곡가의 어떤 뿌리가 되는 곡을 하고 싶어요. 유행인 레퍼토리보다는 누구나 하지 않은 걸 시도하고 싶죠. 내년이 라흐마니노프의 해인데 그의 에튀드를 녹음하는 것도 좋겠죠.”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로 떠오른 임윤찬은 “지금까지 만족한 공연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담담히 말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의미 있는 일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음악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들을 직접 찾아가 연주하는 일이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분들을 제 연주에 초대하는 게 아니라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등에 가서 그분들을 위해 연주하는 거죠. 음악을 나누면서 그분들이 몰랐던 또다른 우주를 열 수 있어요. 음악이 추구해야 하는 이런 일들이 대단한 업적 아닐까요. 금전적 후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임윤찬은 연말에 국내외 독주회를 열며 내년엔 런던 위그모어홀, 밀라노, 로마, 파리, 도쿄 필하모닉과의 협연이 예정돼 있다. 오는 12월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기념 독주회를 연다. 바흐의 ‘3성 신포니아’를 비롯해 올랜도 기번스와 리스트까지 바로크와 낭만주의 시대를 넘나든다.

“처음엔 콩쿠르 연주 곡을 제안받았는데, 콩쿠르를 준비하며 힘들었던 만큼 곧바로 치고 싶진 않았어요. 올랜도 기번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크 작곡가 중 한 명이에요. 바흐 ‘신포니아’는 시적인 표현이 많고 아름다운 작품이죠. 잘 연주하지 않는 보석 같은 곡이에요. 2부는 제 음악 인생을 함께했고 가장 편한 작곡가인 리스트를 골랐어요. 상상을 펼치기엔 그만한 작곡가가 없죠.”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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