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고양이 눈썹 No.42]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9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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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020년 10월

▽삶은 블랙홀과 닮았습니다. 강력한 중력장으로 우리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지요. 그러면서도, 블랙홀 내부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측이 불가한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나?’는 질문에는 똑 부러진 답을 찾기 힘듭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본질을 알기 힘들고 심지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과학자들은 블랙홀을 기어코 찾아서 ‘눈으로’ 보게끔 해줬습니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 5월 처음 발표한 우리은하 중심부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 이미지

보이지 않는 블랙홀을 전세계 천문학자들이 연대해 촬영하고 이미지로 구현해 냈죠. 붉은 고리 모양의 블랙홀은 사실 ‘블랙홀의 그림자’ 모습입니다.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홀 대신 그 그림자를 관측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블랙홀은 중력이 강해 시공간과 빛까지 휘게 만드는데, 블랙홀 뒤 천체에서 나오는 빛도 휘어져서 보입니다. 이런 방식을 역이용해 블랙홀 앞뒤로 휘어진 빛(블랙홀의 그림자)을 촬영하고 블랙홀 윤곽(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한 것이지요.

▽삶도 그림자를 통해 윤곽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삶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니 그 대척점이자 그림자인 죽음을 거울삼아 찾아보는 방법이죠. 앞에서는 안보이니 뒷면을 찾아 보는 것이지요. 중력으로 빛을 휘게 하는 특성을 이용해 블랙홀을 촬영했듯, 죽음의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면 삶을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죽음이 가진 2가지 특성
1) 필연성 -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맞이해야 한다.
2) 예측불가 - 예고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른다.

▽‘WeCroak’이란 앱이 있습니다. 이 앱은 ‘하루 5번 죽음을 사색하면 행복해진다’는 부탄 속담과 ‘잊지 마라. 당신은 죽을 것이다’ 알람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한 격언을 보내줍니다. 격언과 함께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죠. 삶이 풍성해지기 위해선 죽음을 가까이 두라는 의미입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키에프스키는 20대 때 급진주의 사회혁명 단체에서 활동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짜르 니콜라이 1세는 서유럽 자유주의 사조 유입을 두려워해 젊은 지식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자 사형 집행을 기획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와 친구들이 그 대상이 된 것이죠.

그는 1849년 12월22일 동료들과 함께 사형 집행대 앞에 섰습니다. 두 눈이 가려진 뒤 마지막 5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 데 쓰고 싶다.”

“이토록 빨리, 또한 영원히 어둠속으로 들어서야 할 찰나로구나. 만약 내가 죽음을 당하지 않느다면, 내 삶은 갑작스럽게 무한하고 완전한 영원으로서 매 초가 한세기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쳐가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리라.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으리라.”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가 ‘짠’하고 나타나 사형 대신 시베리아 유배를 가는 것으로 형벌이 바뀌었고 훗날 이 사건은 짜르가 꾸민 ‘훈육을 위한 연극’으로 드러났습니다. 사형 체험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자신의 심리 묘사는 그의 장편소설 ‘백치’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도스토키에프스키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부터 미친 듯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펜과 종이가 주어지지 않아 머릿속으로 다 써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2020년 9월
2020년 9월

▽과거는 창피하고, 현재는 속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아직 안 죽어봐서 죽음이 뭔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탄소(C) 배열이 바뀌는 것 뿐”이라고도 합니다. 육체의 탄생과 소멸은 그저 물리화학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삶과 죽음 모두 영원히 풀지 못 할 안개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옛 선현들의 지혜를 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 보면 어떨까요. ‘살아지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괜찮겠습니다만.

로마 격언 중 가장 인상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CMA’를 소개해드립니다. 금융상품 이름 같아 외우기에도 좋습니다.

1) Carpe diem (카르페 디엠, Seize the day )
- ‘오늘을 잡아라’라고 직역될 텐데요, 흔히 ‘지금은 즐겨라’라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현재를 진실하게 소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Remember to die)
- ‘죽는다는 것을 잊지마라.’ 원래 권력자들에게 경고하는 문구로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인데요, 매일매일 하루하루 시간 자체에 겸손하라는 경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 Amor fati (아모르 파티, Love of fate)
- 운명을 사랑하기.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거나 인정하라는 뜻은 아니겠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원망하는 대신 당당히 맞서고, 때로는 정면 돌파하라는 뜻이라고 니체는 해석했습니다.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개척하라는 뜻입니다.

우스개로 해석하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일 텐데요, 저는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이미지 출처 / ‘The mind journal‘ 홈페이지 / ’You only live once(YOLO·당신은 한번만 산다)‘는 한 가수가 노랫말로 불러 유명해졌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퍼뜨린 것은 마케팅 업체, 특히 여행업계와 소비업계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The mind journal‘ 홈페이지 / ’You only live once(YOLO·당신은 한번만 산다)‘는 한 가수가 노랫말로 불러 유명해졌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퍼뜨린 것은 마케팅 업체, 특히 여행업계와 소비업계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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