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윤핵관 수렁 벗어나 국가 정상화 플랜 내놓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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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이 尹 뽑아준 주된 이유는 ‘文정권 청산’
윤핵관 완전 축출, 배우자 리스크 단속하며
文정권 5년간 뒤틀린 나라 정상화 착수해야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빨리 수렁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윤핵관이 당 대표를 제거하겠다며 판 구덩이가 갈수록 깊어지고 오물로 범벅돼 수렁이 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추하고 가치 없는 내분이다. 하다못해 조선시대 당파싸움에도 세계관·학풍·노선 차이 같은 대립의 뿌리가 있었다. 국힘 사태는 공천권·당권을 쥐겠다는 탐욕이 전부다.

수렁에서 벗어나는 길은 명확하다. 윤핵관을 축출하고 과감한 인적 쇄신과 시스템 정비를 통해 국가 정상화 마스터플랜에 착수하는 것이다.

먼저 권성동 원내대표를 당장 사퇴시키고 새 원내대표를 뽑아 당내 리더십을 회복시켜야 한다. 편의적 당헌 개정 같은 꼼수는 두고두고 후과를 남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외적 요인을 꼽아 보라. 단연 여당 내분과 배우자 리스크 아니겠는가.

장제원 의원이 주무른 인사가 정권의 첫 걸음을 어떻게 엉클어뜨렸는지, 지방선거 대승 직후 윤핵관이 불 지른 내분이 어떤 타격을 줬는지 돌아보라.

이준석 대표에 대한 대통령의 불쾌감·괘씸해하는 감정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던 검은 속을 생각해 보라.

도덕성이나 품격은 차치하고라도 이준석이 순순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한 그들의 전략 마인드는 역대 정권 실세 그룹 가운데 실력이나 중량으로도 최하류, 최경량급임을 보여준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면 연말쯤 스스로의 허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리됐을 수도 있는 이준석 리스크를 옳지 못한 방법으로 다뤄 보수진영 전체에 큰 상처를 줬다.

“쫓아내고 당을 장악해야 합니다. 선거 압승한 지금이 적기입니다….” 석 달 전 그렇게 속삭였을 간신들은 지금도 속삭일 것이다. “직무대행 체제로 가면 이준석이 6개월 후 대표로 돌아옵니다….”

단견이다. 윤핵관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준석이 복귀하면 의원들이 가만있을 것 같은가. 차세대 최고지도자감으로 기대받던 이준석은 스스로를 왜소화시킨 결과 윤핵관이라는 썩은 나무가 있어야만 피어나는 버섯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찌보면 윤핵관은 운이 좋았다. 만약 부당하게 쫓겨날 위기에 처한 당 대표가 시종일관 냉정하고 절제된 언어로 대응하면서 법적 구제절차를 밟았다면, 싸움은 윤핵관의 완패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한 쫓아내기로 지탄을 받게 된 윤핵관을 이준석의 독설이 구해줬고, 온갖 독설로 궁지에 몰린 이준석을 ‘권성동 재신임’ 같은 민심역행 처사로 구해주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남의 애를 혼내려면 내 애부터 혼내야 한다. 윤핵관을 확실하게 정리하면 이준석도 설자리가 좁아진다.

장제원의 “정부 임명직 공직 안맡겠다”는 선언, 그리고 권성동이 새 비대위 출범 후 물러난다 해도 국민은 윤핵관의 퇴진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올 1월초에도 백의종군을 선언했었다.

정권 초 황금기를 당권욕으로 망친 윤핵관들의 행태는 절치부심 정권교체를 이뤄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두 사람은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탈당하는 게 진정 윤 정권을 위하는 길이다. 그렇게 해서 정권 성공에 밀알이 된 뒤 차후에 무소속으로 생환해 복귀할 수도 있다.

대통령실 내 윤핵관 라인 정리에 대해 야당과 좌파세력은 검핵관 프레임으로 딴지를 걸고 있다. 윤핵관 라인뿐만 아니라 온갖 끈을 잡고 들어온 모든 세력에게 공평한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 특히 만약 부속실을 제외한 대통령실의 일반 부서나 정부 기관에 김건희 여사 끈으로 들어간 이들이 남아 있다면 언제든 폭로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김 여사는 국민들이 “나오라” “나오라” 아우성칠 때까지 고개 숙이고 있어야 한다. 좌파세력은 24시간 뿅망치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도이치모터스 등 김 여사 관련 의혹 수사를 일반인들과 똑같이 엄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해 속히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그걸 장려해야 한다. 그게 이기는 길이다.

여당 사태는 윤 대통령에게 뼈아픈 교훈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흉악범이어도 형사소송법을 어긴 채 처벌할 수 없듯이, 정치의 세계에서도 당내 민주주의와 절차적 정당성, 명분이 결핍된 방법으로는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지지율이 바닥일 때가 씨름의 되치기처럼 반전 반등을 노릴 적기다. 바닥이라는 명분으로 과감히 인적 쇄신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에 천착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윤석열을 선택할 때 기대했던 과제, 즉 문재인 정권 5년간 뒤틀린 나라의 정상화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 정상화의 핵심 중 하나는 전임 정권 시절 저질러진 비리·불의에 대한 진실 규명과 엄중한 사법적 책임 추궁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방송 문화 역사 등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심각한 궤도 이탈이 있었다.

그냥 각 부처별로 알아서 그때그때 제기되는 문제를 바로잡는 식이어선 안된다. 이미 산발적으로 경찰 검찰 등에서 수사가 이뤄지지만 마스터플랜과 대통령의 분명한 의지를 모르니 일선은 제대로 뛰지 않고, 국민은 답답해한다.

종합적 리스트를 만들고 완급·우선순위를 면밀히 해야 한다. 중도와 온건진보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우편향 칼춤, 과거로의 회귀가 되지 않도록 세밀하고 균형감있게 조율해야 한다.

임기 5년을 전반 중반 후반기로 나눠 △전반기는 국가 정상화와 4대 개혁·민간 주도 성장의 기반 조성 △총선 후가 될 중반기는 4대 개혁 완수 △후반기는 민간 주도 성장을 통한 국가 재도약기로 제시하면 국민의 답답함이 줄어들 것이다.

윤 대통령은 비호감 언행, 부인·처가 문제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국민이 자신을 밀어줬는지 잊어선 안 된다. 국가 정상화를 정파적 목적으로, 진영 결집이나 지지율 높이기 도구로 악용하지 않는다면 국정 방향 정체성을 확실하게 해줘 국정 동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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