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9·11 설계’ 알자와히리 제거…발코니 나온 순간 닌자 미사일 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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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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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중앙정보국(CIA)이 지난달 31일 새벽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알카에다의 수괴 아이만 알자와히리(71)의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 그는 안가 발코니에 혼자 나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상공에 떠있던 드론이 이 상황을 포착했고 ‘닌자 미사일’이라고 불리는 초정밀 유도 미사일인 R9X 미사일 2발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R9X 미사일은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폭약이 든 탄두가 없고, 표적에 명중하기 직전 6개의 칼날이 펼쳐지는 방식으로 목표물을 제거한다. 이번 작전에서 알자와히리 외에 다른 사상자는 없다고 한다. 미군은 2017년 알카에다 핵심 간부였던 아부 알마스리를 제거할 때도 이 미사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홀로 발코니 나와 있을 때 노려 제거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은 수개월 동안 치밀하게 진행됐다. CIA 등 미 정보기관들은 올 4월 알자와히리로 추정되는 인물이 카불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교외의 한적한 곳에 은신했던 오사마 빈 라덴과 달리 알자와히리는 주민 왕래가 많은 지역에 숨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서방국가들의 대사관이 있던 고급주택가다. 그가 사망한 집은 탈레반 정권 내무장관인 시라주딘 하카니의 보좌관 소유로 알려졌다.

미국은 알자와히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의 모형을 만들어 내부 구조를 분석하며 작전을 준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작전을 승인했고, 엿새 뒤인 31일 오전 6시 18분경 집 발코니에 있던 알자와히리를 제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알자와히리 제거에 성공했다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어디에 숨어 있든, 당신이 우리 국민에게 위협이 된다면 미국이 당신을 찾아 제거할 것이라는 점을 오늘 다시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2001년 9·11테러 10년 후 빈 라덴이 제거됐고, 이후 11년 간 은신해온 알자와히리가 제거된 것은 미국 정보전과 대(對)테러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내에선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궁지에 몰렸던 바이든 대통령의 입지가 다소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지상군을 아프간에서 철군시켜도 테러와는 계속 맞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석 달 뒤 탈레반의 아프간 재점령으로 타격을 입었다. NYT는 “(이번 작전은) 미국이 지상군을 배치하지 않고도 여전히 테러조직과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바이든의 주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전했다.

● 9·11테러 설계…빈 라덴 사후 조직 이끌어
1951년 이집트 명문가에서 태어난 알자와히리는 카이로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전인 14세 때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현지에서 난민 구제 활동을 하며 빈 라덴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빈 라덴이 자금을 담당하고, 알자와히리가 조직 건설과 이슬람 혁명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 1988년 알카에다를 창설했다. 9·11테러 설계에 깊이 관여했던 알자와히리는 “(9·11테러는) 신의 은총이 있기에 가능했던 위대한 승리”라고 했다.

다만 9·11테러 이후 미국의 집요한 추적으로 알카에다의 세력이 약해졌고, 2011년 빈 라덴 사후에는 조직이 사실상 괴멸되면서 후계자였던 알자와히리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됐다. 사망설이 돌때마다 건재 과시용으로 영상을 공개해온 그는 올 4월에도 이슬람 교리를 강연하는 영상을 배포했다. 그동안 알카에다와의 연계설을 부인해온 탈레반은 알자와히리가 카불에서 은신해온 것이 확인되며 궁지에 몰리게 됐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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