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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코인은 디지털 金’ 기대 산산조각… 거품 빠지며 옥석 가리기[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2022-06-28 03:00업데이트 2022-06-2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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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생태계 붕괴 위기… 고점 대비 70% 안팎 폭락
스테이블코인마저 와르르… ‘2만개 코인’ 각국 규제 바람

김자현 경제부 기자
《“디지털 신기술에 대한 믿음이 결국 유동성 거품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7년부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에 투자해온 회사원 이모 씨(31)는 최근 코인 투자를 접기로 했다. 상승장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계속 투자하면서 한때 1억5000만 원이 넘는 이익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재투자한 끝에 최근 수익은 1500만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씨는 “24시간 돌아가는 시장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투자하고, 마음 졸이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결국 큰 손실을 본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걸 후회한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의 기축통화를 꿈꿨던 가상자산의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은 지난해 11월 최고점을 찍은 뒤 불과 7개월 만에 70% 폭락했고,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시가총액은 3분의 1 토막 났다.

최근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루나·테라’의 폭락 사태에 이어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 기반의 파생상품마저 청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코인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를 거치면서 두 번째 폭락장을 거친 코인 시장이 재정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7개월 만에 70% 폭락… “가상자산 대학살”
가상자산 시장은 지난해 11월을 정점으로 추세적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상자산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7일 오전 비트코인은 2만113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2761만7000원에 거래됐다.

비트코인은 이달 18일 ‘심리적 지지선’으로 꼽히는 2만 달러가 붕괴되며 장중 한때 1만7708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이후 소폭 반등했지만 지난해 11월 최고점(6만8790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69.3% 폭락한 수준이다.

불과 7개월 전 7만 달러에 육박했던 비트코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올해 4월 말 4만 달러로 주저앉았다. 이후 루나·테라 폭락 사태를 거치며 3만 달러가 무너졌고, 최근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자 2만 달러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함께 코인 시장의 두 축을 이루는 이더리움도 이날 1230달러에 거래돼 지난해 11월 최고점(4812달러) 대비 74.4% 폭락했다. 이 밖에 바이낸스코인(―62.9%), 리플(―73.5%), 카르다노(―82.8%) 등 시가총액 상위 코인 대부분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2조9044억 달러까지 불어났던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도 현재 9635억 달러로 7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최근 이 같은 추락세를 두고 “가상자산 시장의 대학살”(CNBC방송), “비트코인의 기록적 궤멸”(블룸버그통신), “1990년대 후반의 닷컴버블 연상”(뉴욕타임스) 등의 평가가 이어졌다.




○ “디지털 금 아냐”… 위기에 더 약한 코인 시장
2018년 폭락장을 끝으로 잊혀졌던 가상자산 시장을 다시 키운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세계적으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었다. 향후 유동성이 회수되고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金)’으로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특히 비트코인의 공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돼 있고 4년마다 채굴 난도가 높아진다는 ‘희소성’에 주목하며 투자자들은 공격적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비트코인으로 투자금이 몰리면서 이더리움, 리플 등 알트코인 시장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연준이 강력한 긴축에 돌입하자 ‘디지털 금’에 대한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최근 1년간 금 가격(KRX금거래소 기준)이 고점 대비 2.67% 하락한 반면 비트코인은 68.8% 폭락했다. 비트코인 하락세는 미국 나스닥지수(―27.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17.9%) 한국 코스피(―28.4%) 등 주가지수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컸다.

연준의 긴축 행보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투자자들이 앞다퉈 가상자산에서 투자금을 빼낸 것이다.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관 등 전문 투자가들이 코인 시장에 들어오면서 가상자산이 주식 같은 전통 자산과 동조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루나·테라 폭락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코인)에서도 안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이어 이더리움 기반의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에서 판매되는 파생상품이 청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최근 코인 대출 서비스를 하는 미국의 셀시우스네트워크는 모든 고객 자산에 대한 인출을 중단했다. 2020년 이후 급증한 가상자산 파생상품들이 코인 시장을 ‘폭락의 소용돌이’로 이끄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상승장에서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최근 2년간 가상자산 시장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가상자산 자체가 공포(fear itself)가 됐다”고 진단했다.
○ “코인 옥석 가리기 본격화”
세계적 긴축 움직임에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쳐 코인 시장의 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상자산은 상대적으로 가치평가가 불확실해 주식 같은 전통 자산에 비해 투자자 이탈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미국 최대 코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최근 직원 1100명을 해고하는 등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올 1분기(1∼3월) 매출이 전년 대비 27% 줄어든 탓이다. 같은 기간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와 빗썸의 매출도 각각 28.6%, 50.1% 급감했다.

최근 루나·테라 폭락 사태 등을 거치며 세계 각국의 가상자산 규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회의 초당적 협력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규제 법안 제정이 탄력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의회도 3월 가상자산에 대한 맞춤형 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가상자산 규제안(MiCA)’을 의결했다.

현재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은 2만여 개에 이른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가상자산 대부분은 화폐가 아니라 쓰레기였다”며 “대장 격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비트코인은 8000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폭락장을 거치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던 코인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의 민낯을 본 만큼 비교적 안전한 코인으로 평가받거나 팬층이 두껍거나 기술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투자 가치로 연결시킨 코인만 살아남아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자현 경제부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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