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사회적 소통 늘려 자기정체성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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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
스스로 해결하는 법 못배워 불안
게임 몰입도 관계형성 미숙한 탓
부모-교사들의 적극적 역할 필수

이수련 원장이 진단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과 해결책은 포괄적이다.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통계 중 하나인 청소년 정신건강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접근을 할 때가 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수련 원장이 진단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과 해결책은 포괄적이다.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통계 중 하나인 청소년 정신건강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접근을 할 때가 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현대의 아동청소년은 자기 자리가 없는 존재들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자리를 맡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이수련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이 말하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이다. 이 원장은 8일 인터뷰에서 아동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악화 원인은 “아동청소년들이 ‘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비굴함’ 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무기력, 우울증, 주의결핍, 과잉행동, 자해, 자살 등 모든 정신병리적인 증상들의 바탕에는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이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마음을 편히 둘 수 없는 아이들이 부유한 환경에도 수두룩하다”고 했다. 이 원장의 분석은 정신 불안의 원인을 무의식에서 찾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이론이 토대다.

한국의 유아청소년 정신건강은 각박한 현실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지금까지 유아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이 경쟁을 유발하는 진학 위주의 교육과 관계 맺기의 어려움이 지적돼 왔지만, 코로나19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교육부는 13일 초등생 10명 중 3명이 코로나 이후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는 정신건강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장소인 집, 학교, ‘불특정한 곳’에서의 불편함과 단절, 접근의 어려움이 컸다고 진단했다.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부모님과의 불편한 관계와 학습의 어려움, 학교를 가지 못하는 데서 온 친구관계 단절, ‘불특정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얻었던 재미와 경험의 단절이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발표에서도 원격수업과 대외활동 감소가 친구나 선생님 등 학교생활에서 대인관계가 나빠진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 원장은 요즘 청소년들을 “완전히 순종적이거나 내 갈 길 간다”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유형 다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데서 온 결과”라고 했다. 완전히 순종적인 경우는 살아오면서 부모의 지시, 타인의 시선에 익숙했기에 나만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데서 나온다는 것. 내 갈 길 간다도 겉으로는 개성이 넘쳐 보이지만 자신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 사회적으로 연계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즐기는 문화가 사회적이지 못하고 쾌락에 목표를 두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의 하나라고.

아이들은 공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들은 공부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부모가 잘하기를 요구하는 순간부터 “부모의 행복과 불행에 영향을 주는 기재로 변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한다 해도 자신의 삶의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공부를 못할 경우 내 삶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부모를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우리 청소년들은 남을 위한 공부를 한 탓에 스펙이 우수한 청년들도 정체성을 찾지 못해 정신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청소년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몰입에 대한 분석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정과 선택, 의미 부여에 서툰 청소년들이 어려운 현실 세상 대신 혼자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연애를 부차적으로 여기는 이유도 감정, 이해, 오해 등 관계 형성에 필수적인 것들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연을 힘들어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에 현실에서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보다 SNS를 하고 게임을 하면서 편안함과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SNS 몰입 부작용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거나 내가 하는 것을 타인의 눈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고 했다.

이 원장은 SNS에 빠진 청소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만남의 기회를 주고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모와 교사의 적극적인 역할 등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른들도 못 했던 것을 강요하지 말고, 사회가 믿을 만한 곳이라고 아이들이 느끼게 하려면 어른들이 잘 살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원장은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현실을 볼 때마다 거대한 벽 앞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가 교사, 학부모, 미술치료사 등 팀을 꾸려 매달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여는 것도 벽을 깨기 위해서다. 부모들은 강의를 들으며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고 한탄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원장은 서강대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정신분석학 박사를 받고 생브리외 아동청소년 메디컬 심리센터 등에서 임상을 했다. 저서로는 ‘자크라캉 세미나’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등이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에듀플러스#아동청소년#자기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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