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 오른쪽 청력 잃고도 무대 다시 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1일 1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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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힘든 법을 몰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심청가’를 4시간 완창해도 힘들지 않았기에 ‘춘향가’ 8시간 완창에 도전했다. 스무 살 되던 해, 최연소 나이에 최장시간 춘향가 완창에 성공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 후 1년 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온 몸에 기운이 빠져 계단 한 칸 오르기 힘들었고, 매일 병든 닭처럼 졸았다. 20대 후반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과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을 각각 재해석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와 ‘억척가’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프랑스, 호주, 미국, 브라질, 루마니아 등 세계 순회공연을 다녔다. 하지만 사천가와 억척가를 다시는 부르지 않기로 결심하고 2017년 돌연 잠적, 2019년 말까지 무대를 떠났다.

그녀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찬란함과 고통이 그의 삶에 왔다 떠나기를 반복한다. 20일 서울 영등포구 카페에서 만난 소리꾼이자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 이자람(43) 이야기다. 이자람은 희극과 비극이 교차했던 삶을 담은 에세이집 ‘오늘도 자람’(창비)을 15일 펴냈다. “2020년 초부터 블로그에 ‘이득봉’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에게 10년 전에도 책을 내라고 연락했던 편집자님이셨어요. 10년 전엔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포기했는데 이번엔 기회를 잡았죠.”

이자람 전에도 창작 판소리는 있었지만 사천가와 억척가처럼 대중적 인기를 끈 작품은 드물었다. 2007년 초연한 사천가는 사천에 사는 뚱뚱하지만 착한 ‘순덕’이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와 싸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2011년 초연한 억척가는 위, 촉, 오 삼국시대에 전쟁을 겪으며 억척같이 살아간 여인의 인생을 다룬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유럽 관중들은 브레히트의 희곡이 한국 전통예술로 둔갑해, 한 사람이 수십여 명의 등장인물, 심지어 전쟁터 총성소리까지 연기해내는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브라질 상파울루 극장 프로듀서는 공연 직후 무대로 뛰어 올라와 엎드려서 이자림의 구두에 입을 맞췄다. 미국 시카고 사천가 공연 중 한 여성이 벌떡 일어나 울면서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다.

“파리에서 첫 사천가 공연을 했을 때에요. 프랑스 유명 연극배우가 막이 내린 뒤에 절 찾아왔어요. ‘본인이 마리오네트가 되기도, 마리오네트에서 빠져나와 마리오네트를 조정하는 사람이 되더라. 이런 양식으로 브레이트 작품을 재해석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서사자와 등장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판소리의 스토리 텔링 양식에 충격을 받은 거죠,”

책은 예술가가 무대 위 혼을 쏟아 붓기 위해 철저히 그 부담을 홀로 짊어진 고독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자람은 수백 번의 무대를 거치며 ‘소리앓이’를 겪는다. 온몸의 근육과 에너지를 사용해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신체적 이상이 찾아온 것. 이자람은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오른쪽 청력이 소실됐고, 무대에서 노래하다 허리가 삐기도 했다. 루마니아 한 공연에선 무대 위에서 심장이 죄어들어오고 숨이 막힌 적도 있었다. 2017년 돌연 무대를 떠나면서 사천가와 억척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소리앓이 때문이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이런 예술이 만들어져도 되는 거였을까.’

“억척가는 2시간 40분 동안 전쟁터의 군인과 장군들, 그리고 자녀 셋을 잃은 어머니까지 몰아치는 장단 위에 쉼없이 음역을 바꿔가며 연기해야 했어요. 억척가 무대에 서기 전엔 늘 불안했어요. 무대 위에서 죽을 것 같은 감각으로 계속 노래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죠.”

이자람은 2017년부터 2019년 11월 ‘노인과 바다’의 첫 무대에 서기 전까지 2년 11개월 동안 겨울잠을 자며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을 돌아봤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목소리의 원천이 어디에 있으며, 그 목소리가 가닿는 곳이 어딘지”를 상상하는 ‘상상력 훈련’을 했다. 5km 밖 남산타워까지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가, 10m 앞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가에 따라 소리의 길이를 조절하는 연습이었다. 그는 여전히 고민한다. ‘죄다 늘어놓지 않아도 멋있을 수 있는 미덕은 더 철이 들어야 생기는 걸까.’

“소리앓이를 겪으면서 나의 오만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젊었을 땐 ‘내 소리 대단하지?’라며 무조건 내지르기만 했는데 긴 시간 무대 위에서 혼자 수백 명의 관객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내 체력적 한계점을 정확히 알고 에너지를 분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소리꾼에서 직접 판소리를 만드는 작창가, 밴드 보컬, 에세이 작가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자람은 영화를 만드는 게 다음 꿈이다. 판소리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판소리를 하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단다. ”만약 당신이 그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클라이막스 장면은 무엇일까요?“ 기자의 질문에 이자람은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클라이막스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엔딩신은 알겠어요. 무대를 마친 소리꾼이 분장실로 돌아와 한복을 벗고 추리닝으로 갈아 입은 뒤, 바나나를 입고 물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모습. 그게 영화의 끝이었으면 좋겠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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