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인간 존엄’ 가치 탐구… 헌법학 개척 외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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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헌법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고 헌법재판소 탄생에 기여한 김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뉴시스
한국헌법학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고 헌법재판소 탄생에 기여한 김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뉴시스
“한평생 ‘인간 존엄’의 가치를 탐구하며 헌법학 개척의 외길을 걸으셨던 분입니다. 정치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여러 번 받았지만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집중하셨습니다.”

26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난 김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제자인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72)은 27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고인을 추모했다.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1961년 독일 뮌헨대에서 법학석사, 1971년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유학시절 유명 수필가 전혜린 씨(1934∼1965)와 결혼했는데, 전 씨가 요절하는 아픔을 겪었다.

196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고인은 1998년까지 35년 동안 서울대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법조계에선 “같은 세대 헌법학자 중 가장 많은 후학을 배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인은 국내 최초로 국제헌법학회 세계학회(IACL) 부회장을 지냈으며 한국공법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헌법학의 지평을 넓혔다. 법대생 필독서인 ‘헌법학개론’을 비롯해 20여 권의 책과 400편이 넘는 논문을 펴냈다.

고인은 헌법학개론에서 유신헌법에 대해 ‘공화적 군주제’라고 서술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일주일간 연행되고 책이 압수되는 고초를 겪었다. 1993년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고인은 사법부 독립과 위헌법률 심사권 도입을 주장했는데 이는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양건 전 감사원장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김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헌재 설립 등의 내용을 담은 ‘6인 교수 헌법개정안’을 발표했지만 전두환 정권 등장으로 빛을 보지 못했고 교수님은 체포령 속에 도피생활을 하셔야 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의 구순 기념 논문집을 준비하고 있던 이효원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해 1000쪽이 넘는 저서 ‘인간의 권리’를 출간할 정도로 끊임없이 연구를 이어오셨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27일 오후 빈소를 찾았다. 서울대 법대 시절 제자였던 윤 당선인은 “고인이 강의한 헌법학에 관심이 많았다”며 유족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옥경 씨, 자녀 정화 수진 수영 수은 상진 씨, 사위 박영룡 장영철 우남희 씨, 며느리 김효영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2호실(02-3779-1918)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8시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헌법학 개척 외길#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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