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노년이 주는 선물, 명랑하게 받아들이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3일 14시 43분


코멘트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겹벚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겹벚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77)는 6일 휴대전화 메시지로 한 장의 사진을 불쑥 기자에게 보내왔다. 봄을 알리는 매화 앞에서 은은하게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가 머무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해인글방에 봄이 다가와서일까. 평생 꽃을 노래한 희수(喜壽)의 시인은 “매화가 활짝 피었다”며 한 편의 시를 함께 보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고마운 봄”(이해인 시 ‘봄 일기’ 중)이라는 시구엔 암 투병 중에도 명랑하게 아프자고 말하던 그의 희망찬 태도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 수녀가 지난달 28일 시집 ‘꽃잎 한 장처럼’(샘터)으로 독자 곁에 돌아왔다. 그가 새로 쓴 글을 모아 신작을 낸 건 2019년 11월 출간된 에세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마음산책) 이후 2년 3개월 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인글방 안에 머물며 2년 간 쓴 시와 일기를 모았다. 출간 직후 교보문고 3월 첫째 주(3월 4~10일) 시 분야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이유를 묻자 그는 8일 통화에서 수줍게 답했다.

“모두 답답하고 힘들어서 제 시를 찾은 것 같아요. 누군가와 만날 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을 수도 없는 시대에 저 역시 기댈 곳은 기도와 시밖에 없었죠.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공동선이 무엇인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감이 주는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이 전달된 것 아닐까요.”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겹벚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겹벚꽃을 들고 있는 이해인 수녀.
그는 신작에서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팬데믹 시대를 버티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 단순한 진리지만 1968년 수도서원(修道誓願·수도회에 들어가 수도자로 살 것을 다짐하는 일) 이후 54년 간 삶을 성찰해 온 수도자가 건네는 위로는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그는 “외출을 못 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웃을 배려하는 법을 배운 건 코로나19가 내게 준 선물”이라며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엄청난 아픔엔 안일한 방관자로 살아온 세월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곤 한다”고 고백했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년·가톨릭출판사)를 시작으로 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2004년·분도출판사), 에세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2011년·샘터) 등에서 꽃에 천착한 그는 신작에서도 꽃을 들여다본다. “사랑과 우정/평화와 기도를/시들지 않는/꽃으로 만들자”(이해인 시 ‘고맙다는 말’ 중)에선 희망이, “오랫동안 알고 지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그들의 이름을 꽃잎으로 포개어/나는 들고 가리라 천국에까지”(이해인 시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선 그리움이 어른거린다. 그는 “월간지 샘터에 함께 연재하던 법정스님(1932~2010), 최인호 소설가(1945~2013)도, 나보다 먼저 수도자가 된 친언니 수녀님도 2017년 세상을 떠났다”며 “신작을 낸 것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으니 내가 쓴 글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암 때문에 수십 번의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평생 1000편이 넘는 시를 쓰고도 펜대를 놓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몸이 아프다고 힘들어하기보단 노년이 주는 선물을 명랑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마음에 고여 있다 흘러나오는 제 글을 읽고 사람들이 희망을 얻는 일이 너무 행복합니다. 힘이 닿는 한 계속 시를 쓰고 싶어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