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걸리는 단백질 구조 해독, AI한테 맡겼더니 몇 분만에 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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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선정 ‘올해의 혁신 연구’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백민경 박사후연구원팀이 7월 사이언스에 인공지능(AI) ‘로제타폴드’로 단백질 구조 해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로제타폴드’가 밝힌 단백질 구조. 면역 신호물질인 인터류킨-12(파란색)가 수용체(보라색)에 결합한 모습이다. 워싱턴대 제공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백민경 박사후연구원팀이 7월 사이언스에 인공지능(AI) ‘로제타폴드’로 단백질 구조 해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로제타폴드’가 밝힌 단백질 구조. 면역 신호물질인 인터류킨-12(파란색)가 수용체(보라색)에 결합한 모습이다. 워싱턴대 제공
인공지능(AI)으로 단백질 구조 해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연구가 16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뽑은 올해 최고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 선정됐다.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와 백민경 박사후연구원(사진)이 7월 사이언스에 공개한 논문이다. 사이언스는 1996년부터 매년 그해 최고의 혁신 연구 성과를 선정해 발표하는데 한국인 연구자가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몇 분 만에 단백질 구조 해석 뚝딱, 생명공학 혁신 길 열어


단백질은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생체 분자로, 구조에 따라 매우 다양한 특성과 기능을 갖는다. 단백질 구조 해독이 생명과학 연구와 신약 개발에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사람이 실험을 통해 직접 수백에서 수천 개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단백질의 구조를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대 수십 년의 노력과 시간, 비용이 필요하다.

베이커 교수와 백 연구원은 짧게는 수 분에서 길어야 몇 시간 안에 단백질 구조를 정확하게 해독하는 AI ‘로제타폴드(RoseTTAFold)’를 개발했다.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사전에 밝힌 단백질 구조를 해석한 결과와 로제타폴드가 분석한 결과가 90% 이상 일치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홀든 소프 사이언스 편집장은 “과학적 발견을 가속화하고, 판도를 바꿀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사이언스는 편집진이 뽑는 최고의 혁신 연구 성과 외에 독자를 상대로 온라인 투표도 진행하는데, 여기서도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가 38.9%의 지지로 1위에 올랐다. 이 연구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인류가 50년 넘게 풀지 못한 난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생화학자 존 켄드루는 1957년 X선을 활용해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혔다. 인류가 처음으로 구조를 해독한 단백질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X선과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활용해 10만여 종의 단백질 구조를 해독했다. 하지만 이는 수십억 종의 전체 단백질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컴퓨터 모델을 활용한 해독을 시도해 왔지만 정확도가 신통치 않았다.

로제타폴드는 세 종류의 AI로 구성된다. 미지의 단백질이 주어지면 단백질 데이터베이스에서 비슷한 아미노산 서열을 찾는 AI와 단백질 내부에서 아미노산들이 연결되는 형태를 예측하는 AI, 입체 구조를 제시하는 AI가 서로 협력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각 AI가 제시한 결과를 개선하며 정확도를 높인다. 연구논문의 제1저자인 백 연구원은 전화 인터뷰에서 “단백질 구조 해독에 대한 인류의 개발 역사에서 정점을 찍은 것이 최근의 AI를 활용한 방법”이라며 “밝혀진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미궁 속의 단백질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에 분석 맡기고 백신 개발에 집중 가능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이 복잡한 사슬 구조로 연결된 형태다. 사슬이 꼬이고 얽히며 접히는 현상이 일어나고 복잡한 입체 구조를 형성한다. 과학자들은 AI에 이런 복잡한 구조 해독을 일임하면 백신이나 치료제 등 다른 응용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 연구원은 “로제타폴드가 단백질 간 결합 형태를 예측한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신약 개발 플랫폼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이 분야는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7월 백 연구원의 로제타폴드 논문이 사이언스에 발표된 날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2’ 연구 논문이 경쟁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됐을 정도다. 딥마인드는 ‘알파폴드2’가 98.5%의 예측 정확도로 36만5000개 이상의 단백질 구조를 해독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네이처는 로제타폴드 논문을 의식해 알파폴드2 논문 발표를 서둘러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백 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단백질 구조 예측 학술대회(CASP)에 등장한 알파폴드2를 보고 연구에 착수했다. 두 팀 모두 선의의 경쟁을 통해 만든 AI의 코드를 학술지를 통해 공개하고, 분석한 단백질 구조 데이터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사이언스 독자 투표에서 올해 최고의 연구 성과 2위로 뽑힌 연구는 34.3%의 지지를 받은 고대 퇴적물 속 인류의 DNA 연구였다. 스페인 연구팀이 현생 인류와 공존하다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위장관 안에 현대인과 같은 유익균을 갖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고대 인류와 현생 인류 간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들이 다수 나왔다. 3위는 26.8%의 지지를 받은 생체 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사용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이용해 원하는 DNA 부위를 정확히 자르는 유전체 교정 기술로 2012년 등장해 빠른 속도와 높은 정확도로 생명과학의 판도를 바꿀 신기술로 주목받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시력을 개선시켰다는 연구 등 올해 인체 적용 성공에 대한 조짐이 보였다는 평가다.

이 밖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 개발과 전자의 ‘무거운 형제’ 같은 입자로 고에너지 양성자 입자를 충돌시킬 때 만들어지는 뮤온에 대한 새로운 측정법, 환각제를 이용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 화성의 지진 관측, 감염병 치료에 필요한 단일클론항체 개발, 핵융합에너지의 발전이 혁신 성과 후보에 올랐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사이언스#올해 최고의 혁신적인 연구 성과#백민경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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