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준비 미리 해야 행복한 노후… 금융-죽음공부는 필수”[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10-23 03:00수정 2021-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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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40세때 ‘50세 은퇴’ 목표 세워 준비… 분당 이어 위례에 인생학교 개설
지식-지혜 서로 가르치고 배워… ‘어른 위한 학교’ 100곳 개설이 꿈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은퇴후의 삶… 생계 外 재미-의미 있는 일 찾아야
수업을 마치고 위례스토리박스 조형물 앞에 선 백만기 교장과 수강생들(위쪽사진). 백 교장은 은퇴 이후 10여 년간 성당 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하우스콘서트를 열어왔다. 밴드와 함께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백만기 교장(아래쪽 사진 왼쪽).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백만기 씨 제공
12일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스토리박스. 쨍한 노란색을 기조로 한 건물들 속 한 교실에 두툼한 책을 든 사람들이 모여든다. 대부분 50대인 학생 4명이 발제와 토론을 하면 이를 지켜보던 백만기 교장(69)이 가끔 끼어들어 진행을 돕고 설명을 해준다. 교재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알려진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 위례인생학교 ‘금융투자’ 수업 현장이다.

“수업은 참여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강사가 학생이 되고, 학생이 다시 선생이 되기도 하는 수평적인 시스템이죠.”

실제로 이 수업에 학생으로 참여한 오정선 씨는 앞 시간 생활영어 수업에서는 강사였다. 오랜 해외생활 뒤 귀국해 영어교육 자원봉사를 많이 한단다.

○‘어른들을 위한’ 두 번째 인생학교가 출범하다

사실 그는 분당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국 평생교육기구인 U3A(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민이 운영하는 자율학교 개념을 도입한 ‘아름다운인생학교’를 2013년 분당에 열었다. 위례학교는 지난해 8월 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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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학교는 이제 궤도에 올랐으니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제 꿈이 인생학교를 100개 만드는 것인데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가을학기에는 생활영어 금융투자 심리학 우쿨렐레 등 10개 강좌가 개설됐고 문화답사 등 야외강좌도 있다. 월 1만 원 운영회비만 내면 3과목까지 수강할 수 있다.

자신이 정말 하고픈 게 뭔지를 찾는 퇴직자, 젊은 시절 로망인 악기 배우기를 이곳에서 시작한다는 60대 등 사연은 다양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자세는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인생 2막”

백만기 씨는 50대 초반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인생 1막에서 막연하게 꿈꾸던 많은 일에 도전했다. 고전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분당FM방송 진행자로도 일했다. 성당 교우들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콘서트를 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봉사에 참여했다. 호스피스 전문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가 인생학교였다.

“은퇴 직후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굉장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모였다가 단순 역할에 실망하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무렵 영국 U3A를 알게 됐어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한 시니어들의 대학입니다. 회비만으로 다양한 강좌가 이뤄지는데, 운영위원과 강사가 모두 자원봉사자였습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개최한 ‘은퇴 후 8만 시간’ 에세이 공모전에 영국 U3A와 같은 학교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주제로 응모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2013년 분당 수내동에 오피스텔 하나를 빌려 개교했죠.”

가족 친지들은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말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엔 사회에 꼭 필요한 커뮤니티였다. 분당학교는 2018년 사회공헌 차원에서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해온 한 백화점 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인생학교 등 시민 자율 활동의 가장 큰 고민으로 공간 문제를 든다. “사회에 공간은 남아도는데 지역이기주의나 부처이기주의 탓에 활용이 쉽지 않아요. 지자체나 공공기관, 구청, 도서관 등에서 공간을 제공해 주면 예산 없이도 시민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어요.”

○‘은퇴는 기획하는 것’

―50세 은퇴를 목표로 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1970년대 학번인데 당시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60세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자산운용 업무를 하다가 40이 됐을 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는 없다, 50에 은퇴하자’고 목표를 세웠지요. 은퇴 뒤에는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죠. 50세 은퇴를 목표로 하니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우선 경제적 자립을 해야겠다, 둘째 은퇴 후 할 일을 찾자.”

―‘준비된 은퇴’ 이후 삶에 대해 자평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19세기 폴란드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먹고사는 일,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 중 하나가 부족하면 삶은 드라마가 되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고요. 먹고사는 일로는 은퇴 무렵 친구 3명과 주식투자클럽을 결성해 16년째 매달 두 번씩 만나 주식 운용을 협의 중입니다. 재미있는 일로는 동네 이웃과 밴드를 결성해 정기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고 글쓰기도 짬짬이 하고 있습니다(저서 2권을 냈다). 의미 있는 일로는 성남아트센터 자원봉사, 시각장애인 도서낭독 봉사, 인생학교 설립이 있죠.”

그는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비결은 ‘미리 준비하고 기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은퇴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하냐고 묻기에 고1 때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것과 고3 때부터 하는 것과 어느 것이 유리하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은퇴 준비를 일찍 할수록 좋은 이유는 복리의 마술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에겐 금융교육과 죽음교육 필요”

인생 2막만 17년 차. 오랜 은퇴 생활을 통해 그는 요즘 한국인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두 가지 교육이 결여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금융교육과 죽음교육이다.

“모두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할 뿐, 돈을 모으고 지키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며 회원들을 보니 금융에 대해 너무 몰라요. 다른 분야는 전문가 수준인 분들도 그렇더군요.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문자 문맹은 생활이 불편할 따름이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은퇴자가 평생 모은 돈을 금융사 직원 권유로 사모펀드에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다는 뉴스가 흔하죠. 그래서 인생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6개월 과정 교육을 6회 정도 진행했죠.”

이런 그는 한국인의 금융 이해도가 낮은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의 비결은 조기 금융교육이에요. 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성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인척들이 금일봉을 선물합니다. 중산층의 경우 4만∼5만 달러(약 4700만∼5900만 원) 정도 된다는데, 대신 아이는 친인척들 앞에서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발표해야 합니다. 미리 부모로부터 자금 운용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작은 회사 하나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됩니다. 만약 그 학생이 세계적인 금융회사에 입사했다고 칩시다. 한국 학생도 공부를 잘해 그 회사에 들어갔고요. 누가 자금 운용을 잘하겠습니까.”

은퇴자들은 금융을 알면 금융회사의 공포 마케팅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노후에 필요한 자금으로 7억, 10억 운운하는데 듣지 마세요.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해 달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금융사 직원들은 고객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하니까요.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입니다. 요즘 직장 은퇴자 대부분은 국민연금 월 100만 원 정도는 확보하고 있죠. 여기에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월 200만 원 정도 현금 흐름은 마련할 수 있어요. 자산운용은 스스로 공부부터 하세요. 또 하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도 돈 버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인생 2막, ‘죽음’에 대한 공부 필요해

―죽음교육은 무슨 말씀인지요.

“2009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전문 과정을 이수했는데, 제가 평생 받은 교육 중 가장 유익했습니다. 죽음 공부야말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부입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화제를 꺼내면 ‘왜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하죠. ‘닥치면 의사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황망하게 떠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은퇴준비#금융#죽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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