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치 좌향좌… 코로나 민심, 긴축 대신 복지공약에 한 표[글로벌 포커스]

파리=김윤종 특파원 , 김수현 기자 입력 2021-10-16 03:00수정 2021-10-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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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 총선 좌파정당 약진
좌파계열 정당 2년 전부터 기지개
서민 유권자들 “빵과 버터가 중요”
이상기후도 좌파승리 도와
지난달 26일 독일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이 하루 뒤 수도 베를린 당사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프란치스카 기파이 베를린 시장 당선자, 울라프 숄츠 당 대표, 마누엘라 슈베지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지사 당선자. 기파이 당선자는 통일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통합된 후 등장한 최초의 여성 시장이다. 슈베지크 당선자 또한 집권 기독민주당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의 지역구이자 보수 성향이 짙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 사민당 간판을 달고 뽑혔다. 베를린=AP 뉴시스
“유럽 중도좌파 정당의 낙관적인 가을이 이어지고 있다.”

5일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독일과 노르웨이 총선, 이달 초 이탈리아 지방선거 등 최근 유럽 주요 선거에서 좌파 정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오랫동안 유럽 좌파 정당이 부진을 면치 못했던 것과 대조적이라는 의미다.

이번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른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마지막으로 승리한 시기는 20년 전인 2001년이다. 영국 제1야당 노동당 또한 2010년 총선에서 집권 보수당에 제1당을 내준 후 11년째 야당에 머물러 있다. 이랬던 유럽의 정치 지형이 ‘좌회전’한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극화, 홍수 폭염 폭설 등 이상 기후, 극우 정당에 대한 반발 심리 등이 꼽힌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 좌파를 구했다”며 전염병으로 팍팍해진 삶 탓에 우파의 긴축 정책 대신 좌파의 사회복지 확대 정책이 각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빵과 버터’가 중요했다”며 법치와 질서를 중시하는 우파보다 복지 확대를 내세운 좌파가 강점을 가질 환경이 조성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기조가 내년 4월 프랑스 대선 등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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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향좌’ 유럽


유럽 좌파의 상승세는 2019년부터 시작됐다. 2019년 핀란드와 덴마크 총선에서는 모두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승리했다. 지난해 1월 스페인에서도 중도좌파 사회노동당과 급진좌파 포데모스가 좌파 연정을 출범시켰다.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해 스페인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1975년 이후 46년 만에 처음 좌파 연정이 탄생했다.

지난달 13일 노르웨이 총선 역시 중도좌파 노동당을 비롯해 좌파 계열 정당이 전체 169석 중 합계 101석을 차지했다. 2013년부터 8년간 집권해 온 우파 보수당은 67석에 그쳤다. 이에 따라 현재 연정 구성을 주도하고 있는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동당 대표(61)가 새 총리에 올랐다.

유럽연합(EU)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는 독일에서도 같은 달 26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25.7%를 얻어 집권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24.1%)을 제쳤다. 사민당이 마지막으로 총선에서 승리한 시점은 2001년이었다. 아직 연정 구성이 끝나지 않았지만 16년간 집권한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67)의 후임으로 올라프 숄츠 사민당 대표(63)가 유력해진 상태다. 숄츠가 올해 안에 새 총리에 오르면 1997∼2005년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 이어 24년 만에 사민당 출신 총리가 탄생한다. 수도 베를린 시장 선거를 포함해 총선과 같은 날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사민당 후보가 대거 승리했다.

이달 3,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도 북부 밀라노와 볼로냐, 남부 나폴리 등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좌파 후보들이 승리했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17, 18일 양일간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르는 수도 로마와 북서부 토리노 시장 선거에서도 좌파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안사통신은 2월 출범한 마리오 드라기 총리 내각에서도 국방, 보건, 고용, 문화 장관 등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도 좌파가 압승함에 따라 권력의 무게추가 왼쪽으로 기울었다고 평했다.

○ 코로나19로 양극화 심화

이런 변화의 뒤에 코로나19가 자리하고 있다. EU 통계기관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지난해 3월 유로화 사용 19개국을 뜻하는 ‘유로존’ 실업률은 7.2%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8.3%로 치솟았다. 특히 지난해 유로존 GDP는 2019년보다 12% 이상 감소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5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양극화도 심화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과 화이트칼라 전문직 노동자는 재택근무 등으로 코로나19의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다. 또 각국 정부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자산 가격 또한 대폭 상승했다.

반면 강도 높은 봉쇄 조치로 식당 종업원 등 육체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가게 점원 배달원 등 유럽 저숙련 노동직은 인구가 과밀한 지역에서 일해 감염 위험이 일반 사무직보다 약 2배 높았다. 또 지난해 저숙련 저임금 직종은 근로시간이 28% 감소한 반면 사무직 등 고임금 직종은 18% 감소에 그쳤다. 청년계층 노동시간도 26% 감소해 중장년 근로자(15%)보다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임대료 제한,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좌파 정당의 공약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독일 총선이다. 사민당은 임대료 제한, 최저임금 인상, 공공서비스 확대, 부유세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 기민당을 물리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민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재정 지출이 대폭 늘어난 만큼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총선 당일인 지난달 26일 베를린에서는 도이체보넨 등 대형 민간 부동산회사 10여 곳이 보유한 임대주택 20만 채를 몰수한 후 공유화하도록 시 정부에 촉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민간 기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지만 과반수의 유권자가 찬성했다. 조만간 취임할 프란치스카 기파이 시장 당선자는 어떤 식으로든 주민투표 결과를 시정에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이상 기후와 바이든 효과

기후 재난이 자주 발생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7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 주요국에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200명 이상이 숨졌다. 8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에서는 폭염과 강풍 등으로 산불이 확산돼 각국마다 최대 2만 헥타르 이상의 숲이 불탔다. 이로 인해 탄소배출 ‘제로(0)’ 등 기후변화 대책을 주창하는 녹색당이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우파 정당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BBC는 석유부국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지난달 총선에서 8년 만에 집권 우파 정당이 패한 것 또한 기후변화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노르웨이는 풍부한 석유, 천연가스를 보유한 자원부국이다. EU가 최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터라 이번 총선에서도 에너지가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많은 유권자들이 풍력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 강화, 석유산업 비중 축소 등 ‘탈(脫)탄소’를 주창한 좌파 정당 쪽에 표를 던졌다.

1월 집권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 또한 유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화상 연설을 통해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2020년 대비 최소 30% 줄이는 ‘국제메탄서약’ 마련을 위해 EU 등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이 임명한 존 케리 미 기후특사 역시 세계를 누비며 친환경 정책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극우 정당에 대한 거부감


좌파 부상으로 이들과 정반대편에 있는 극우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은 눈에 띄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대거 유입된 후 반이민·반EU를 주창하며 한때 약진했지만 지나친 극단주의 성향으로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7년 총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당 이후 극우정당으로는 처음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득표율 또한 12.5%에 달해 기민당, 사민당에 이어 일약 제3당으로 약진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10.4%를 얻어 제5당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 시의회 선거에서도 극우 자유당이 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5년 같은 선거 때 득표율(31%)보다 2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크리스티안 뤼트 전 AfD 대변인은 사석에서 “이민자를 총살하거나 가스로 처리하면 된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나치 독일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지도자부터 과거사 사과에 앞장서 온 독일에서 공당의 대변인이 ‘가스’ 운운했다는 사실이 일반인에게도 큰 거부감을 안겼다.

한때 ‘세계 최연소 국가정상’으로 젊은 우파 정치인의 상징으로 각광받았던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전 총리(35)가 최근 부패 혐의로 전격 사임했다. 그리스 극우정당 황금새벽당의 전직 의원 6명 또한 지난해 범죄조직 운영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강도 높은 봉쇄로 국가 간 이동 인구가 줄어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감소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 프랑스 대선이 분수령

유럽의 좌향좌 현상이 더 공고해질지는 독일과 함께 EU 쌍두마차로 꼽히는 프랑스의 내년 대선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상두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최근 유럽 선거 결과는 좌파 정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지난 4, 5년간 집권한 우파 정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라며 좌향좌 추세가 완전히 고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그는 독일 총선 역시 사민당의 승리보다는 안정적이고 신중한 이미지로 ‘남자 메르켈’이라 불리는 숄츠 대표가 인물 대결에서 승리한 경향이 짙다고 분석했다.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가 7월 대홍수 당시 수해 현장에서 웃는 모습으로 큰 비판을 받은 데다 라셰트가 주지사로 재직 중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코로나19 상황도 나빠 숄츠가 반사이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중도 실용주의를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극우 후보가 추격하고, 좌파 후보는 부진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6일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4%의 지지를 얻었고 극우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17%), 역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15%)가 뒤를 이었다.

반난민을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힌 제무르는 소속 정당이 없고 정식 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도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강하게 비판한 저서 ‘프랑스의 자살’로 극우 진영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민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르펜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부분의 범죄자는 흑인 무슬림이다. 이들을 아예 프랑스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일삼고 있다.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대표(11%), 중도좌파 사회당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6%) 등은 선두권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사회당 소속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실업난 등 여러 실정으로 사회당이 회복 불능 수준으로 추락했음을 감안할 때 당분간 프랑스에서는 좌파 득세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올랑드 이후에도 좌파 정당에서 걸출한 인물이나 정책을 배출하지 못한 데다 무슬림 테러범에 의한 여러 대형 테러가 발생했던 점도 좌파 정당에 불리한 요소”라고 진단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유럽정치#코로나 민심#긴축정책#좌파정당#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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