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뛰고 당국은 규제 고삐 더 조여…속타는 ‘대출난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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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추가 가계부채 대책 앞두고 실수요자들 ‘대출 보릿고개’ 우려
“하루 30여명 창구 찾아와 문의” 9월 가계대출 잔액 4조 이상 늘어
일부 은행, 이미 대출 문턱 높여…2%대 대출금리 찾아보기 어려워

“대출 연장 가능할까요? 전셋값 오른 만큼은 더 받을 수 있다는데….”

내년 4월 전세자금대출 만기를 앞둔 A 씨(38)는 전세대출 한도가 축소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30일 급히 은행 창구를 찾았다. 은행원은 “대출 만기가 남은 데다 ‘전셋값 증액 범위 내’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대출 규제가 나오는 상황이라 안심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의 고삐를 바짝 조이자 자금이 필요한 대출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엔 ‘대출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대출 난민’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 수요자들의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내년 전세대출 만기 연장이나 잔금대출 전환 등을 벌써부터 물어보는 고객들이 최근 급증했다”며 “하루에 최소 30명 이상이 창구에서 같은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에선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등 세입자 보호와 직결된 대출을 거절하는 사례도 나와 대출 수요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6%대, 내년엔 4%대로 제한하는 당국의 방침에 따라 목표 기준을 이미 초과했거나 근접하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연이어 대출 규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했다. 전셋값이 2억 원 올랐다면 2억 원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은행도 같은 방식의 규제를 검토 중이다. IBK기업은행 등도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였다.

금리도 한 달 새 0.4%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2%대 대출 금리는 시중은행에서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은행들이 우대금리는 줄이고 가산금리는 올리는 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9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 연동)는 연 2.981∼4.53%로 8월 말(2.62∼4.19%)보다 0.34∼0.361%포인트 상승했다.

대출 보릿고개 속에서 은행들이 대출을 조건으로 예·적금, 보험, 펀드 등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이른바 ‘꺾기 영업’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16개 은행에서 대출 전후 ‘1개월 초과 2개월 이내’에 다른 금융상품에 가입한 꺾기 의심 금융거래는 8만4070건, 4조957억 원 규모로 나타났다.

집값 급등으로 자금 수요가 커졌는데 당국과 은행이 대출의 수도꼭지만 조이면 실수요자들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당국의 대출 규제에도 지난달 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4조729억 원 늘었다. 대출 보릿고개가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 속에 대출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8월 증가액(3조5068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당국이 이달 추가 가계부채 대책도 내놓을 예정이어서 당분간 ‘대출 보릿고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증비율을 낮춰 전세대출 금리 인상을 유도하는 등 최근 급증하고 있는 전세대출 등의 수요를 집중 관리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일 ‘금융브리프’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 은행의 대출 증가세가 실물 경제 상황과 괴리를 보여 작은 시장 충격에도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 당국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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