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홍색규제’ 리스크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1-08-19 03:00수정 2021-08-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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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드리밍’과 ‘몽중인(夢中人)’은 1994년 개봉한 영화 ‘중경삼림’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 실려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노래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은 특유의 몽환적 연출과 ‘꿈’을 소재로 한 노래들로 1997년 반환을 앞둔 홍콩 청년들의 불안감을 표현했다. 이 노래들이 중국의 노래방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중국 정부가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방해하는 노래의 ‘블랙리스트’를 10월 1일부터 도입하기 때문이다.

▷노래방 금지곡 지정의 계기는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에서 발생한 접대 술자리 성추행 사건이다. 회식 문화를 바꾼다며 중국 정부는 ‘음주를 동반한 회식’을 금지하는 한편 중국의 통일과 주권, 영토 보전, 민족 단결을 해치는 노래, 미신을 퍼뜨리는 노래, 음란 도박 폭력 마약과 관련된 노래를 퇴출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청소년의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던 ‘아이돌 숭배 문화’도 당국의 표적이 돼 팬클럽 계정 4000여 개가 폐쇄됐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7월 1일 이후 중국에선 ‘홍색규제’ 도입이 일상이 됐다. 기념일 전날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뉴욕증시에 상장해 ‘괘씸죄’에 걸린 디디추싱이 신호탄이었다. 점유율 80%로 ‘중국의 우버’로 불리던 디디추싱의 앱은 당국의 지시로 중국 내 모든 앱 장터에서 삭제됐고 주가는 폭락했다. 중국판 ‘배달의 민족’ 메이퇀뎬핑은 모든 배달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지시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됐다.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란 당국의 비판에 1위 게임업체 텐센트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축소했다.

▷지난달 23일엔 ‘사교육과의 전쟁’이 선포됐다. 정규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육기업의 설립이 금지됐고 기존 업체는 비영리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140조 원 규모의 중국 사교육 시장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중국 중산층 학부모들은 불법 고액 가정교사를 구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사립학교의 비싼 교육비가 사회적 위화감, 출산율 저하 등 부작용을 낳는다는 이유로 베이징시는 14개 사립 초중고교 운영권을 강제로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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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연장 여부가 결정될 내년 10월 20차 당 대회까지 공산당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방위 규제로 중국 기업들의 가치는 1조 달러(약 1180조 원) 이상 증발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중국 당국의 규제 리스크가 명확해질 때까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빽빽이 쌓인 나무 블록을 허물지 않고 하나씩 제거하는 ‘젠가 게임’처럼 서서히, 요령껏 위험을 줄이며 중국에서 발을 빼는 방법을 우리도 고민해야 할 때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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