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0% 백신 맞아도 코로나는 계속된다

  • 신동아
  • 입력 2021년 5월 22일 1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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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같은 ‘집단면역’의 허상

● 방역 약한 고리 타고 순식간에 유행 확산
● 코로나는 죽지 않는다, 단지 느려질 뿐
● ‘세계의 약국’ 인도 뒤덮은 코로나19 재앙
● 사망자 95%, 중증환자 82%가 60세 이상
● 치명률 관리하며 ‘공존’할 방법 찾아야

5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2주가 지난 사람은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당선인 시절 백신접종을 마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마스크를 벗은 채 활짝 웃으며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CDC가 집계한 미국인 백신접종률은 5월 12일 기준 35.4%다. 한국 정부가 ‘집단면역’ 달성 목표로 제시한 ‘국민 70% 접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벌써 각종 방역 조치가 강제되지 않던, 코로나19 유행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걸까. 이 질문에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정기석 한림대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그보다는 오히려 자국 내 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유인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 교수 설명이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하면 감염 위험이 크게 낮아지는 건 맞다. 하지만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코로나19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상황에서까지 감염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백신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 불분명하다. 백신접종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때 마스크를 벗고 실내외에서 활동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

방역 약한 고리 타고 순식간에 유행 확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5월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자는 이날부터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알린 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5월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자는 이날부터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알린 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미국 의료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힘을 얻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5월 3일 “많은 전문가는 미국이 집단면역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 교수 발언을 인용해 “전국 평균 백신접종률이 95%에 도달해도 일부 소도시 접종률이 70%에 그칠 경우, 코로나19는 해당 소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립시치 교수가 언급한 “전국 평균 백신접종률 95% 도달”은 현재 미국에서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다. 김우주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얘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백신 개발 이후 빠른 속도로 접종자 수를 늘렸다. 그 결과 신규 확진자 수와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문제는 이제 맞을 사람은 거의 다 맞은 듯 보인다는 점이다. 백신접종률이 도무지 오르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 및 사망 사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접종 속도가 빨라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4월 27~29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관련 인식 조사’ 결과 “백신접종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61.4%에 그쳤다. 나머지 약 40%의 절반(19.6%)은 “접종 의향이 없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19% 수준이었다. 김우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백신 미접종자가 모인 집단을 중심으로 감염이 퍼져나갈 수 있다. 현재 세계 많은 전문가들이 그 점을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성인 대상 코로나19 백신접종이 본격화한 뒤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다. 2세 미만 아동 누적 감염자 수가 지난해 11월 377명에서 올 1월 5780명으로, 두 달 새 15배가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2월 9일 영국의학저널(BMJ)은 1월 한 달 동안 이스라엘에서 5만 명 이상의 어린이·청소년이 코로나19에 신규 확진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이 다시 성인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하며 유행 종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의 약국’ 인도 뒤덮은 코로나19 재앙
코로나19 병원체가 방역의 약한 고리를 타고 얼마나 급속히 확산할 수 있는지는 인도 사례가 잘 보여준다. 5월 들어 인도에서는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매일 40만 명 안팎씩 발생하고 있다. 최근 3개월 새 환자가 가장 적었던 2월 16일(9121명)과 비교하면 40배 이상 폭증한 수준이다.

인도는 제약 분야 기술력이 뛰어나 ‘세계의 약국’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확산을 상대적으로 잘 차단하기도 했다. 뒤늦게 감염병 대재앙이 벌어진 배경에는 정치권의 오판이 있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자국의 코로나19 대응 역량을 과신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비롯한 인도 정치인들은 5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를 돌며 대규모 유세를 펼쳤다. 이것이 코로나19 확산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불길은 인접국 네팔을 넘어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존스홉킨스대 자료를 토대로 “네팔의 코로나19 주간 신규 확진자가 4월 중순 이후 약 1200%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5월 3일 화상 브리핑에서 “(인도발 감염 확산 등의 영향으로) 최근 2주간 보고된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2020년 코로나19가 처음 확인된 뒤 6개월에 걸쳐 발생한 환자 수보다 오히려 더 많다”며 “백신접종이 시작됐다 해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키지 않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은 코로나19 백신접종 확대로 세상이 좀 더 안전해질 것으로 믿었다. 머잖아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좀 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에서 이 기대를 배신하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는 분위기다. 국내 감염질환 분야 전문가로 손꼽히는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도 5월 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집단면역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이날 “백신 예방접종률 70%를 달성한다고 해서 마스크를 벗고, 세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고, 거리두기가 종료되는 일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이 아닌 국가 수준의 방역 수칙만 논의했다. 이제는 국가 혹은 집단이 일정 면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도 개인이 활동 범위를 정하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는 죽지 않는다, 단지 느려질뿐
5월 12일(현지 시간) 인도 벵갈루루 외곽 공공 화장터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 시신이 화장되고 있다. [뉴시스]
5월 12일(현지 시간) 인도 벵갈루루 외곽 공공 화장터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 시신이 화장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미국이 5월 13일 ‘마스크 프리’ 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런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2020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발생이 보고된 뒤 1년여간 이 미증유의 감염병에 대응하는 건 세계 각국 정부의 주요 업무였다. 많은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고 대규모 진단검사와 격리치료 등을 통해 바이러스를 지역사회에서 박멸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노력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이제는 코로나19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는 분석이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19가 20세기 초 팬데믹을 초래한 스페인독감과 같은 길을 갈 것으로 내다봤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순식간에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며 당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 명 이상을 감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5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가공할 전파력과 치명률은 떨어졌지만, 바이러스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변이를 거듭해 현재까지 계절독감 형태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또한 이처럼 토착화돼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머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 방역 당국은 최근 들어 코로나19 방역 목표는 ‘바이러스 퇴치’가 아니라 ‘일상의 회복’이라고 강조한다. 윤태호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5월 7일 정례 브리핑에서 “해마다 계절독감이 유행한다고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거나 특별한 방역 조치를 내놓지는 않는다”며 “코로나19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제해 시민들이 일상 생활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현재 방역정책의 목표”라고 밝혔다.

5월 14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1.45%다. 코로나19 감염자 100명 가운데 1.45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다. 고령자의 경우 감당해야 하는 위험 수준이 훨씬 더 높다. 국내 코로나19 사망자의 95%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80세 이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18.75%가 세상을 떠난다. 방역 당국이 고령자가 코로나19 백신접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일상 복귀 시점이 빨라질 수 있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백신접종을 통해 바이러스를 종식할 수 없다고 해서 백신접종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 설명이다.

“집단면역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감염병이 더는 확산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 도달하려면 기초감염재생산수가 낮아져야 한다. 기초감염재생산수는 사전 면역이나 다른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감염병 환자 한 명이 평균적으로 몇 명의 환자를 더 만들어내는지 나타내는 값이다. 기초감염재생산수가 3이라면 환자 한 명이 새로운 환자 세 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코로나19 면역을 보유하고 있으면, 코로나19 환자는 한 명만 더 발생하게 된다. 그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한 원래 환자가 회복되면, 감염병 환자 총수는 한 명으로 유지된다. 이것을 인구 전체로 확장한 게 집단면역 개념이다.”

美 화이자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도 관심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수는 유행 초기 2.5에서 3.5 정도로 예상됐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바이러스 변이가 발생하며 이보다 다소 높아졌다고 보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정재훈 교수는 “기초감염재생산수가 4라면 전체 인구의 4분의 3이 면역을 가져야 확진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기초감염재생산수가 5라면 인구의 5분의 4가 면역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백신접종을 통해 방역 당국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5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65세 이상, 고위험층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차질없이 진행되면 올 추석 무렵에는 거리두기나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 등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때도 코로나19 감염 위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코로나19 치명률을 관리하며 바이러스와 공존할 방법은 찾는 것이 된다. 현재 글로벌제약사를 비롯한 세계 바이오업계 관심이 바로 여기 집중돼 있다. 한때 세계를 뒤덮었던 신종플루 공포는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가 끝냈다. 코로나19 치료제 시장에 이런 ‘게임체인저’가 등장한다면, 인류는 좀 더 편안히 코로나19를 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이 경쟁에서 선두에 선 것은 제약사 화이자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성공한 화이자의 앨버트 볼라 최고경영자(CEO)는 4월 말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올해 연말이면 화이자가 개발한 초기 코로나19 증상 치료제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3월 화이자가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이 약물은 현재 성인을 대상으로 안전성 등을 평가하는 임상1상을 진행하고 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6월호에 실렸습니다》


#코로나19#집단면역#코로나치료제#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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