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맛 우러난 ‘꿩메밀칼국수’의 유혹[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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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제주동문시장 내 ‘골목식당’의 꿩메밀칼국수.

임선영 씨 제공
제주시 제주동문시장 내 ‘골목식당’의 꿩메밀칼국수.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여행을 떠나면 습관적으로 먹던 것을 떠나 새로운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게 된다. 메밀이 생각날 때면 평양냉면이나 막국수를 먹곤 했지만 메밀 산지인 제주에서는 정작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꿩메밀칼국수가 있으니 꼭 한번 맛볼 만하다.

제주시 관덕로 동문시장을 50년간 지켜온 ‘골목식당’. 이름처럼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아 아는 이만 가게 되는 식당이다. 메밀 하면 강원도 봉평을 떠올리지만 정작 최대 메밀 산지는 제주도다. 매년 5, 6월이나 9, 10월이면 하얀 메밀꽃의 장관이 펼쳐진다. 제주의 연간 메밀 생산량이 전국의 30%를 웃돈다. 메밀은 제주 신화에도 등장해 농경의 신(神)인 자청비 여신이 하늘에서 지니고 와서 제주에 심은 다섯 곡식 중 하나다.

꿩메밀칼국수는 제주의 향토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이다. 닭이 귀해 산자락에서 잡은 꿩으로 육수를 냈다고 한다.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가 불가능하니 쌀이 귀했고, 보리 수수 조마저 바닥이 보일 무렵 산자락에서 수확한 메밀로 음식을 만들었다. 국수는 물론이고 떡이나 수제비에도 메밀이 들어갔다. 메밀을 먹으면 속이 아릴 수 있어 반드시 무를 곁들이는 건 제주 사람들이 오랜 시간 먹으며 터득한 지혜다.

골목식당은 메뉴판이 단출하다. 낮에는 꿩메밀칼국수를 하고 밤에는 꿩 구이를 한다. 이 식당을 지킨 국수의 레시피는 변함이 없다. 꿩의 살을 발라내 무와 함께 육수를 내고 메밀 100% 반죽을 손으로 직접 치대 가닥가닥 썰어낸다. 푹 곤 육수에 메밀 면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내면 국물은 수프처럼 걸쭉해진다. 주인장은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먼저 해둔 음식을 내놓는 법이 없다. 주문하면 정성을 다해 끓여 주기에 국수 한 사발을 받으면 뽀얀 김이 모락모락 얼굴을 덮는다. 면을 먹기 전 주재료가 풍부하게 우러나온 국물을 떠먹는다. 속 깊숙한 곳까지 따스해지는 느낌이 참으로 포근하다. 평양냉면이나 막국수에서 느끼는 메밀의 묘미는 면에 집중되는 반면 이 메밀칼국수는 방점이 국물에 있다. 꿩으로 낸 육수는 은은한 향에 탄탄한 감칠맛을 깔아주니 닭이나 쇠고기 육수보다 품위가 있고, 메밀면 사이로 간간이 씹히는 꿩고기는 담백하고 쫄깃해 먹는 재미를 더한다.

메밀만 넣고 면발을 뽑는 건 이곳 사장님의 비법이다. 투박하게 생긴 면이 지긋이 씹히는데 메밀의 구수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메밀만 있으면 뻑뻑하지만 면처럼 가늘게 채를 썬 무가 사이사이에서 부드러운 완충제 역할을 한다. 고명으로는 김과 애호박만 들어간다. 메밀칼국수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쓴다. 면의 허리를 툭툭 끊어놓고 무와 국물을 듬뿍 실어 한입에 넣으면 포근한 수제비를 먹는 것처럼 편안하다. 사장님의 제주도 사투리를 들으며 국수를 먹다 보면 제주의 심장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제주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밑반찬을 해주는데 김치나 나물무침 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꿩메밀칼국수#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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