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으로 얻은 것, 행운처럼 써야 해요”[이재국의 우당탕탕]〈53〉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대학교 친구 중에 복권에 당첨된 친구가 있었다. 날씨가 참 좋았던 5월 어느 날. 동기들끼리 MT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다 같이 전북 고창군 선운사 근처로 갈 계획이라 버스터미널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그 녀석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회비도 냈고, 집에서 나와 터미널로 오는 중이라는 삐삐를 받았기에 나랑 몇 명이 그 녀석과 함께 후발대로 가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 녀석은 “미안해. 어제 한잔 하고 잤는데 알람을 못 들었어. 나 너무 급해서 화장실 먼저 갈 테니까 휴지 좀 사다줘. 돈 여기, 아! 그리고 남는 돈은 복권 좀 사다 주고!” 배를 움켜잡고 뛰어가는 그 녀석. 아, 배 아프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그 녀석이 준 5000원을 받아 터미널 구석에 있는 마트에서 휴대용 휴지 200원짜리를 사고, 나머지는 즉석복권 9장을 사서 화장실로 갔다. 그 녀석은 휴지와 복권을 받더니 “야! 이거 4장은 너 가져. 심부름 값이다!” 나는 100원짜리 동전으로 열심히 복권을 긁었는데 모두 꽝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화장실 갔다 와서 출발하겠다던 그 녀석은 배가 너무 아프다며 우리끼리 출발하라는 말과 함께 후다닥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긁은 즉석복권이 1등에 당첨됐고, 그 당시 돈으로 2000만 원의 당첨금을 받게 됐다. 친구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기 고향에 가서 제법 큰 슈퍼마켓을 인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년 정도 지난 후, 문득 학교에 찾아와서 동기들한테 삼겹살이랑 노래방까지 한턱 크게 쏘고 군대를 간 그 녀석.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분에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꽤 큰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고, 결혼도 일찍 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복권의 운이 오래가지 못한 것인지 요즘 건강도 나빠지고 생활도 어려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지어 SNS로 아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연락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쪽지를 보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복권에 당첨된 20대 남자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20대 중반의 그 남자는 장난삼아 산 복권이 120억 원이라는 큰돈에 당첨됐고, 그 돈을 받자마자 자기 부모님께 집을 한 채 사드렸다고 한다. 누나와 형에게도 집을 한 채씩 사주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집을 한 채 사줬다. 그리고 본인은 한 달에 1억 원씩 쓰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다 보니 10년 만에 복권으로 받은 돈이 모두 바닥이 났다고 했다. 한마디로 거지가 된 기념으로 신문과 인터뷰를 한 기사였다. “행운으로 얻은 건, 행운처럼 써야 해요. 누군가에게 내 행운도 나눠줘야죠. 행운이니까요. 저는 10년 동안 가보고 싶은 곳 다 가봤고, 먹어보고 싶은 것도 다 먹어봤어요. 하늘에서 주신 보너스를 정말 감사하게 받았고, 감사하게 누렸습니다. 오늘 부로 제 통장 잔액은 0입니다. 그동안 즐겁고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계획입니다.” 멋지다. 행운을 실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운은 행운이니까 많은 사람과 함께해야 더 큰 행운이 된다는 걸 아는 사람.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주는 나도 복권을 사봐야겠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행운#복권#당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