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습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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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21세기를 살면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무슨 일이든지 제때 하지 않으면 나도 남도 곤란한 처지에 빠집니다. 경쟁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라면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청소년의 본성에는 어긋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미루는 습관이 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결하면 됩니다. 미루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알더라도 고칠 생각이 없다면 문제입니다.

미루는 습관은 익숙한 문제입니다. 익숙할수록 접근법은 새로워야 합니다. 단순히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단정하고 의지력을 키워서 해결하려고 한다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내가 나와 대화해서 미루는 습관의 정체를 파악해야 합니다. 핵심은 미루면 뭔가 좋은 점이 있어서 미룬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소용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크게 보면 미루는 버릇은 쾌락 원칙에 넘어간 결과입니다. 쾌락 원칙이란 프로이트의 말로 ‘될 수 있는 한 불쾌감을 피하고 쾌감을 추구하려는 무의식의 경향’입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쉬어가세요!” 말을 안 들으면 목소리가 바뀝니다. “해보았자 어차피 소용없어요!”라고. 그래도 외면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옵니다. “언제까지 남이 시키는 대로 살려고 하나요?” 그러면서도 미루었다가 생길 일은 절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속아 넘어가면 시작과 과정은 달콤하고 결과는 쓰디씁니다.

미루는 것은 우선 능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배우면 되지만 어설프게 자존감을 내세우면 함정에 빠집니다. 능력과 성취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기준이라고 믿으면서 힘든 일은 미룹니다. 일단 미루면 자기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실패의 위험을 없애려고 미루기도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에서 잘 나타나지만 완벽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면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과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과정에서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니 결국 완벽함과는 점점 멀어집니다. 미루는 버릇에 빠지기 가장 쉬운 사람은 성공만을 거듭해온 사람입니다. 계속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묶여서 실패할 가능성을 엄청나게 의식합니다. 끝으로, 내 삶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클수록 미루게 됩니다. 업무를 지시한 윗사람에 대한 반항심과 겹치면 최악입니다.

미루기 버릇에서 벗어나려면 내 삶의 판을 내가 통제해야 합니다. 일단 일의 목표를 너무 멀리, 너무 크게 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에 부담이 걸리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클수록 잘게 나누어서 조금씩 차례로 처리하면 됩니다. 떼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 무리를 그릴 때 한 획으로 끝내는 화가는 없을 것입니다. 한 번에 한 마리는 쉽습니다. 그러니 시작은 늘 작게,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도록 내가 관리합니다. 일단 한 마리를 그리면 자신감이 생기고 속도가 붙습니다. 기분이 나면 하겠다는 생각은 장애물입니다. 무조건 시작하면 하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일을 산만하게 방해하는 환경은 손을 봐야 합니다. 영화 감상과 서류 작성 중에 쾌락을 위해 서류 작성을 택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휴대전화 같은 것들로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으니 의식적으로 멀리해야 합니다. 일이 끝나면 자신에게 달콤한 보상을 하시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과자 한 쪽도 보상이 됩니다. ‘인내와 보상’이라는 틀을 지혜롭게 활용하면 무조건 의지력을 키워서 해결하겠다는 헛된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의지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루는 습관에 잘 빠집니다. 의지력이 아닌, 현실적인 전략이 더 효과적입니다.

의무감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깨달으면 미루지 않게 됩니다.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 의미를 찾아도 도움이 됩니다. 가끔은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슬쩍 큰 생각 없이 해치워서 자존감을 살짝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킨 일을 스스로 하는 마음을 북돋우려면 그 일을 해서 좋은 개인적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취직이 어렵고 고령층 빈곤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월급을 타니까 한다는 생각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미루는 버릇에서 제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정착시키고 그 방식이 습관이 되려면 슬슬, 조금씩, 어깨에 힘 빼고, 결과가 아닌 과정의 경험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견고해야 합니다. 어떤 한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다 맞지는 않습니다. 궁리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으면 됩니다. 21세기 경쟁력은 창의성에 있다고들 하지만 창의성의 기본은 미루지 않는 습관에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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