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공존하는 선과 악 촬영현장서 그걸 꺼내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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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주연 엄태구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의 제목에 담긴 의미는 모순적이다. 낙원은 아름답지만 밤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낙원에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다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이런 모순은 줄거리와도 맥을 같이한다. 촬영이 진행된 제주도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이면에는 벼랑 끝에 선 박태구(엄태구)와 김재연(전여빈)의 처연한 아픔이 숨어 있다. 범죄조직에 속한 태구는 아픈 누나와 어린 조카를 사고로 위장해 죽인 자들에게 복수한 뒤 제주도로 피신한다. 이곳에서 가족을 잃고 무기상 삼촌과 함께 사는 시한부 환자 재연을 만난다.

이 영화의 모순은 주연 엄태구(38)와도 닮았다. 전작 ‘차이나타운’의 우곤, ‘밀정’의 하시모토에 이어 이번 영화까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을 완벽하게 소화했지만 카메라 밖 모습은 소심 그 자체다. 그에겐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내성적 갱스터’ ‘수줍은 빌런’. 14일 만난 그는 “내 안에 여러 가지의 내가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뗐다.

“어렸을 적 가족과 깡충깡충 뛰면서 노는 모습, 친구들과 장난치는 모습, 그 외 보여지지 않은 모습까지 다양한 자아가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안에 선악이 공존하는데 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촬영 현장이다. 현장에서 그런 것들을 저지르는 것 같다.”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낙원의 밤’에서 범죄조직의 에이스 태구를 연기한 배우 엄태구. 그는 “어떤 역할에 욕심이 나진 않는다. 그 순간에 진정성 있게 살아있는 연기를 하는 것에 가장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낙원의 밤’에서 범죄조직의 에이스 태구를 연기한 배우 엄태구. 그는 “어떤 역할에 욕심이 나진 않는다. 그 순간에 진정성 있게 살아있는 연기를 하는 것에 가장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이번 작품은 전작 ‘신세계’(2013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누아르 컴백으로 관심을 모았다. 상업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은 엄태구는 부담도 있었지만 ‘박훈정표 누아르’에 욕심이 났다고 했다. 원래 마른 체형인 그는 살집 있는 조폭의 느낌을 살리라는 감독의 주문에 9kg을 늘렸다.

“신세계를 봤을 때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낙원의 밤은 정통 누아르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들어오면서 새로움이 가미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누아르라 욕심이 났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어느덧 16년 차 배우가 됐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배우를 그만둘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단다.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한 게 기적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매 순간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촬영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거 작품들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이니 버티는 힘이 된다.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했기에 이것 말고 특기도 없다. 계속 갈고 닦아 보자는 생각으로 버티다 지금까지 왔다.”

그는 가만히 있는 장면이라도 오롯이 그 캐릭터로 있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자신에겐 ‘낙원’이라고 했다.

“어떤 장소로서의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느끼는 찰나가 있다. 고생해서 준비한 장면을 찍는 순간, 고생한 만큼의 살아있는 연기를 끝낸 뒤 차에 딱 탔을 때. 안도의 그 짧은 순간이 낙원인 것 같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넷플릭스 영화#낙원의 밤#엄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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