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한잔 값에 걷어찬 靑정책실장의 품격[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기자 입력 2021-03-30 14:49수정 2021-03-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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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잃은 청와대 참모들 언행, 대통령 책임 없나
文, ‘좀스럽다’는 말 김상조에 했어야
29일 잘린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2017년 11월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지각하면서 “재벌들 혼내주느라고 늦었다”고 말한 그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반년이 채 되지 않은 때, 권력의 서슬이 퍼런 때 공정거래위원장이 한 말이라 더욱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의 거친 언행을 보고 평생 ‘운동’만 한 사람이라 공직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공정위는 재계에서 ‘경제검찰’로 불리는 막강한 자리다. 대기업의 독과점을 뿌리 뽑는 정책과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부처의 수장(首長)은 재벌을 혼내기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장 한 마디는 시장에 바로 영향을 끼치는 자리인 만큼 금융위원장 못지않게 극도로 절제된 표현을 써야 한다. 정책의 균형감각 못지않게 논란이 되는 말을 함부로 뱉어내선 안 되는 자리다.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올해 1월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재벌 혼내주고 왔다’고 했을 때 대통령이 혼냈어야
김상조가 참여연대에서 일하면서 ‘재벌 저격수’나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을지는 몰라도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공정거래위원장 직무 수행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 대해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은 별로 귀담아 듣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재벌을 혼내주고 왔다’는 김상조의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정부 출범 초반인 만큼 의욕에 넘쳐 그런 ‘말실수’를 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태동한 정권이라고 자부한 만큼 대통령 눈으론 그 정도 말쯤이야 애교로 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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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상조가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다른 장관들 앞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은 이 말은 그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두가 공정거래위원장이 언제 오느냐며 기다리던 때, 김상조가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만한 그리 한가로운 자리도 전혀 아니었다.

●언어의 연금술사 이헌재에게 배워라
김대중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현 금융위원장)에 발탁돼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불렸던 이헌재 씨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 선택하는데도 아주 신중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직후 대기업과 금융회사 구조조정을 맡은 엄중한 시기의 막강한 자리였음에도 그는 시장의 반응을 의식해 절제된 화법으로 신뢰를 쌓았다. 그가 김상조처럼 “재벌 혼내주느라 늦었다”는 경박한 말을 썼다면 DJ가 사실상 강압적으로 주도한 구조조정 작업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헌재는 2004년 2월 노무현 정부 이듬해 경기고 후배인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청와대 인근 효자동 한정식 집에서 밤낮으로 술을 먹어가며 삼고초려(三顧草廬)한 끝에 경제부총리 자리로 모셨던 사람이다. 금융시장에서 카리스마가 막강한 이헌재는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취임 인사 한 말씀하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에 한참 뜸을 들이다가 들릴락 말락 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특별히 시장에 주는 메시지는 없었지만, 그가 쓰는 절제된 언어와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청와대 수석 및 보좌관들이 귀를 쫑긋 세우기에 충분했다. 이런 어눌한 듯한 화법(話法)도 기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2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경모 기자
●벼룩의 간 빼 먹은 김상조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말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김상조의 전세금 ‘기습 인상’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가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부동산과의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대통령정책실장이라는 사람이 관련 법 시행 이틀 전에 전세금을 14%나 올린 것은 한마디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파렴치한 짓이었다.

그가 전세금을 올린 시점인 지난해 7월은 정부 여당이 밀어붙인 ‘임대차3법’에 대해 전세시장의 혼선과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비등했던 때였다. 명색이 대통령정책실장이면 부동산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어 시장의 불신을 잠재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은 공직자라면 기본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쳐놓은 촘촘한 부동산 그물망을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갔다.

공직자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얌체 짓으로 김상조가 번 돈은 1억2000만원 전세금이다. 아니 정상적으로 5% 올렸다면 5000만원이기 때문에 추가로 7000만원을 탐하는 바람에 이런 사달이 났다. 은행 통장에 14억원을 꽂아놓고 있는 그가 무슨 돈 욕심으로 7000만원을 더 받으려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7000만원이면 요새 은행 예금금리(연 1%)로 연간 70만원이요, 월급쟁이 신용 대출금리 연 3%로 따져도 1년에 고작 210만원에 불과하다. 한달 이자로 따지면 17만5000원, 하루면 5645원이다. 그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 값에 욕심을 내는 바람에 문재인 대통령이 바가지를 뒤집어 쓴 꼴이 됐다. 소탐대실(小貪大失)도 이런 소탐대실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1일 신임 대통령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담소하고 있다. 문 대통령 오른쪽은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졌다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메리카노 한 잔에 직을 건 소탐대실
재벌의 흠을 털던 김상조는 참여연대 시절 많은 제자들, 그리고 청년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실천하는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네이밍은 김상조나 장하성 같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교수들에게 따라붙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문재인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참 좀스러운 사람이 돼버렸다. 대통령이 야당을 공격하면서 동원한 ‘좀스럽다’는 표현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다.

한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말에서 품격(品格)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재벌 혼내 주느라…’는 김상조의 언행이 도마에 올랐을 때 대통령이 따끔하게 혼내지 않은 것은 오롯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대통령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했다. 정책실장을 한 김상조든 장하성이든, 대통령의 입인 대변인을 했던 김의겸이든 청와대가 어떤 자리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모든 정부 부처들을 휘어잡는 청와대의 그 막강한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자리의 엄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똬리를 트는 바람에 언어의 품격도 사라지고, 차마 눈뜨고 못 볼 일까지 봐야 하는 지경이 됐다. 하기야 ‘좀스럽다’는 대통령의 뜬금없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대통령을 모시는 청와대 참모들의 불찰이다. 이런 말을 청와대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니까 많은 국민이 들여다보는 대통령의 SNS에 나와도 말리는 참모 하나 없었을 것이다. 김상조의 거친 언행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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