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평행이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8일 03시 00분


두 정부 임기 말 공시가 급등
종부세 폭탄에 불만여론 고조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나는 확실히 대상에 들어갑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기준을 놓고 정부 여당이 갑론을박을 벌이던 2004년 11월 주무부처 수장인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빌라에 살고 있던 그는 강남구 도곡동 빌라, 역삼동 오피스텔 등 집 3채를 갖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2년 차였던 당시 여권은 집값이 불안해지자 부동산 투기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기준선을 낮게 잡아 과세 대상을 늘리고 싶어 하는 열린우리당, ‘청와대 386’과 달리 이 부총리와 재경부는 종부세 최초 도입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범위를 최상위 부유층으로 한정하려고 했다.

과세 기준을 얼마에서 자를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재경부 세제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이 부총리가 던진 한마디가 가이드라인이 됐다. “나만 포함시키면 돼.” 시세의 50∼60% 수준이던 기준시가로 봤을 때 이 부총리를 과세 대상 아래쪽 끝으로 포함시키는 선이 대략 9억 원이었다. 이 부총리의 뜻이 종부세 ‘9억 기준’이 처음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나도 부과 대상”이라고 장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듬해인 2005년 7만1000여 명에게 종부세가 처음 부과됐다. 증세(增稅) 논란에 정부는 “1% 미만 극소수 고가, 다주택 보유자만 내는 세금”이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그해 초 이 부총리가 물러나고 집값이 계속 뛰자 노무현 정부는 부과기준을 ‘6억 원 초과’로 낮추고 개인별이던 기준도 ‘세대 합산’으로 바꿨다. 집값 급등까지 겹쳐 종부세 대상자는 2006년 전국 주택보유 가구의 2.4%인 23만1000가구, 2007년엔 3.9%인 38만1000가구로 폭증했다.

이번 주초 정부는 작년보다 평균 19.1% 오른 아파트·다세대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했다. 보도자료 첫 쪽에 “공시가격 9억 원 초과는 전국적으로 3.7%”라고 강조했지만 작년 30만9000채였던 종부세 부과 대상 공동주택은 올해 52만5000채로 70% 늘었다. 서울의 종부세 대상이 ‘공동주택의 16%인 41만3000채’라지만 고가주택 대부분은 아파트이고, 서울 아파트가 168만 채란 걸 감안하면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가 종부세 대상이 됐다는 뜻이다. 강남3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넘어 강서·성북구 등에도 종부세 대상이 속출하고 있다. “종부세 내보는 게 소원”이란 농담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현 정부 부동산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 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금리까지 낮은 상태에서 증세, 대출 억제 등 온갖 대책을 쏟아냈는데도 집값은 폭등했다. 두 정부의 부동산정책의 틀을 모두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짠 것도 같다. 퇴임을 1년여 남기고서야 “부동산정책 말고는 꿀릴 게 없다”(노 대통령), “낙심이 큰 국민들에게 매우 송구하다”(문 대통령)며 부동산 실정(失政)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것도 비슷하다.

임기 말 중산층으로 과세 대상이 급속히 확산한다는 점에서 종부세 문제도 14년 시차를 두고 두 정부가 같은 상황을 맞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은 노 정부 5년 차인 2007년 22.7% 이후 가장 높았다. 노 정부 임기 말 종부세 폭탄에 대한 불만 여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여 대상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세율은 낮춘 뒤에야 잠잠해졌다. 두 정부의 ‘종부세 평행이론’이 마지막 장(章)까지 일치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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