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판결 원고 12명중 생존 5명뿐

“일본이 우리 철모르는 사람을 끌어다가 잘못 맹글지(만들지) 않았냐. 그래 놓고 지금 와서 자신들은 안 그랬다고 하는데, 그럼 누가 우리를 끌어다가 그렇게 맹글었는가.”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 머물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4)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할머니는 서울중앙지법이 8일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건의 원고 12명 중 한 명이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23일 0시 확정됐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는 일본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한 재판부 판단에 공감을 표하며 일본이 여성들을 강제 동원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왜 위안부가 됐겠어. 우리가 위안부가 (된 게) 아니야. 일본이 우리를 위안부로 맹글었어”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으로 건너가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알리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역사는 뼈아픈 역사야. 군중에 널리 알려야 해. 그래서 우리가 끌려가던 나라가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라고 했다.
이번에 확정 판결을 받은 원고 12명 중 이 할머니 등 5명이 생존해 있다. 나눔의집에 따르면 이 할머니와 동명이인인 또 다른 이옥선 할머니 등 2명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현아 서울대 법대 교수는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법원에서 국가면제의 논리를 극복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라며 “피해자가 재판을 받을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가 기존의 국가면제 논리에 앞선다고 선고한 판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이어 “기존의 국제법 논리에 따라 반인도적 범죄라는 중대한 범죄의 피해자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상 모순”이라며 “이러한 모순에 대해 우리 법원이 일본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제관습법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한다”며 “지금까지는 국가면제의 법리가 적용되는 것이 지배적인 ‘실행’이었지만 이탈리아 법원의 ‘페르니 판결’에 이어 우리 법원도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인권의 측면에서 국제법의 진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는 1992년에 이르러서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인정했는데 그보다 30여 년 전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2015년 한일 합의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헌재는 2015년 합의가 조약 체결 절차도 없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최근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가 화해·치유재단의 잔여금을 활용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나왔다. 양 교수는 “(강 대사의 제안은) 2015년 합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는 부적절한 제안”이라며 “합의와 관련해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할 입장에서 오히려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지 못한 제안이 나왔다”고 말했다.
‘나눔의집’에서 피해자들을 돌보고 있는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도 24일 “합의 등을 통해 어떻게든 ‘해결됐다’는 결론에 이르려고 하기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쟁의 재발은 막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정부와 군에 의한 조직적 전시성폭력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일본처럼 피해국의 법정에서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외교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며 “그동안 유엔 등 국제기구는 일본의 전시성폭력과 ‘위안부’ 강제동원을 지적하며 일본 정부가 제대로 사죄하고 배상하며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고 끊임없이 권고했다. 이 문제는 국제인권규범을 위반한 일본과 국제사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웃으며) 27년생입니다.
-최근 우리 법원에서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를 했다, 그러니 할머님들께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했어요. 알고 계시죠?
=응. 알고 있어
-판결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잘못됐지. 우리가 일본에게 말하는 게 사죄를 하라고 하는데. 돈 문제가 아니에요. 내가 1억 하라 했는데 1억이 아니라 3억이라고 해도 안 되지. 돈으로 따지면. 돈 문제가 아닌데, 일본 나라에서 우리 철 모르는 사람 끌어다가 잘못 맹글지(만들지) 않았어? 그래놓고 지금에 와서 자기네가 안 그랬다고 하는데. 자기네가 안 그랬는데 우리가 누가 끌어다가 그렇게 맹글었는가(만들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죠.
-그럼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게 맞다고 보세요?
=사죄. 지대로(제대로) 사죄를 해야지.
-어떤 식으로 사죄를 하는 게 좋을까요?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일본에서 우리를 강제로 끌어간 일이 없고 잘못 맹근(만든) 일이 없다, 학대를 안 했다 하는데.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히 바른대로 반성하라 이거야.
-마음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그럼 저희 한국 정부에서는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웃으며) 한국 정부도 우리가 사죄를 빨리 받게 도와줘야지.
-하고 싶으신 말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웃으며) 하고 싶은 얘기 날마다 해도 날마다 그 말이 그 말인데. 우린 다른 게 없어. 일본에서 우리를 끌어다가 잘못 맹글어(만들어) 놓고, 안 그랬다고 하니까 우리가 좀 섭섭하잖아. 우리가 왜 ‘위안부’가 됐겠어. 우리가 (스스로) 위안부가 (된 게) 아니야. 일본놈들이 우리를 ‘위안부’로 맹글었어(만들었어). 우리가 위안부가 아닌데. 왜 ‘위안부’가 됐겠는가. 그러니 바른대로 반성하라는 거지.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우리 역사는 다른 역사와 달라서 뼈아픈 역사야. 군중에 널리 알려야 해. 많이 알아야지. 그래서 우리가 끌려가던 나라가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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