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긴 정미란 “우승코트서 농구인생 마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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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유방암 수술 뒤 극적 복귀… 챔프 3차전 막판 53초 감격의 출전
2004년엔 신인으로 챔피언반지

KB스타즈의 정미란(35)이 25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뒤 골망 커팅 세리머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 사진). 19세 신인 때인 2004년 금호생명을 사상 첫 챔피언으로 이끈 뒤 펑펑 울고 있는 정미란. 점프볼·WKBL 제공
KB스타즈의 정미란(35)이 25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뒤 골망 커팅 세리머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 사진). 19세 신인 때인 2004년 금호생명을 사상 첫 챔피언으로 이끈 뒤 펑펑 울고 있는 정미란. 점프볼·WKBL 제공
“시작과 끝을 우승으로 장식하게 돼 너무 기뻐요. 아마 국내에선 처음 아닐까요.”

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 맏언니 정미란(34)의 목소리는 밝기만 했다. 정미란은 25일 열린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53초를 뛰었다. KB스타즈 안덕수 감독은 팀이 11점 차로 앞서 승리를 사실상 결정지은 4쿼터 막판 정미란을 투입했다. 슈퍼 루키 박지수(21)는 대선배를 위해 기꺼이 벤치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정미란이 우승 순간 코트에 머물게 하고 싶은 배려였다.

이날 KB스타즈는 1998년 프로 출범 이후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병마와 싸웠던 정미란에게는 꿈만 같은 피날레였다.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출신인 정미란은 19세였던 2004년 금호생명 입단 첫해에 팀의 사상 첫 챔피언 등극을 거들었다. 당시 금호생명은 7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치다 특급 신인 정미란의 가세로 대반전을 이뤘다.

“두 번째 우승을 하기까지 15년이나 걸렸네요. 막내였던 첫 우승 때는 눈물이 엄청 쏟아졌는데, 이번엔 그냥 좋기만 하더라고요.”

신인왕을 거쳐 국가대표로 활약한 정미란은 2017년 6월 유방암 2기 판정이라는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았다. 수술대에 오른 그는 다행히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아 1년 넘게 방사선과 약물 치료를 받은 뒤 코트에 돌아올 수 있었다. “운동은 더 이상 못 하는 줄 알았어요. 하늘이 도왔나 봐요.”

안덕수 감독은 정미란이 구단 숙소에서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지난해 12월 청주 안방 팬 앞에서 잊지 못할 복귀 무대에 오른 정미란은 “다시 코트에 설 수 있다는 게 보너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늘 주전으로 뛰며 앞만 보고 달렸다. 출전 시간은 줄었지만 후배들의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고 챙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미란은 평소 박지수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어려 감정 기복이 있었어요. 잘하고 있으니까 여유를 가지라고 얘기했죠.”

요즘도 매달 암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고 있는 정미란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잡은 농구공을 23년 만에 내려놓으려 한다. 주위에선 더 뛸 수 있지 않냐고 만류하고 있다. 고민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회사와 상의가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물러날 때인 것 같아요. 우승으로 출발해 우승으로 마무리하게 돼 행복할 뿐이에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kb스타즈#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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