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S여고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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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부형권 국제부장
해외 연수로 1년, 특파원으로 3년. 미국 체류 기간은 총 4년이지만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있어서 미국의 유아원(Pre-K), 유치원, 초중고교를 모두 경험해 봤다. 한국의 교육 단계도 다 겪어봤다. 기자이자 학부모로서 두 나라의 공교육 시스템을 비교하며 살피곤 했다.

서울 강남의 명문 ‘S여고’에서 교사 아빠가 쌍둥이 자녀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을 접하면서 ‘미국이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학부모 졸업생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두 학생 성적을 조속히 0점 처리하고, 다른 학생들 등수를 조정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학교 측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뒤에야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미국 학교에서도 비리 의혹이나 부정행위가 발생하지만, 이런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절대평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뉴욕 고교를 3년간 다녔던 딸은 “시험 중에 커닝페이퍼를 보거나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정행위를 적발해 F학점을 주는 건 선생님의 몫”이라고 말한다. 설사 그 친구가 부정한 A학점을 받아도 다른 학생의 성적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국 학교에선 과제물 평가점수가 ‘100점 만점에 105점이나 110점’인 경우도 흔했다. 이 역시 절대평가 영향이다. “네가 공부를 더 하고 싶고, 더 할 수 있으면 더 해라. 그만큼 점수를 더 주겠다”는 뜻이다.

일부 교육 전문가는 “한국에서 절대평가를 실시하면 고교들이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려고 A학점을 남발하는 등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교육 인프라는 그대로 둔 채 도입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기자가 경험한 미국 공립학교에선 학년이 아닌, 수준에 따른 과목을 수강했다. 고교 9학년(한국의 중3)과 12학년(한국의 고3)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흔했다. 선행학습이나 영재교육도 사실상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진행됐다. 최우수 학생들은 AP(Advanced Placement·고교생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대학 입학 전에 이수하는 제도) 과목을 여러 개씩 들었다.

미국 고교도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려는 욕심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A학점을 남발하거나 교사 추천서를 허위로 작성하진 못한다. 적발될 경우 어마어마한 후환이 따르기 때문이다. 딸이 다녔던 고교의 한 교사는 “그런 부정이나 비리가 알려지면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대 명문 사립대) 등에서 ‘당신 학교 학생들은 당분간 받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 고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량(定量) 정성(定性) 평가로 대학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유다. 누가 ‘S여고 사건’의 해결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공교육과 대학입시의 현실을 걱정하며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자는 점차 ‘사회와 나라가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다양한 성공 모델을 창출해야 교육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학교 현장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강조하고 아이들의 잠재력과 상상력을 키우려 노력하더라도, 대학입시의 외나무다리 앞에선 선착순으로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호각소리가 나면 잽싸게 남보다 빨리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게임이 연상된다. 댄스에만 취해 있다간 ‘앉을 의자’가 사라진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신나게 춤을 춘 뒤에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어야 한다. 외나무다리 대신 ‘기회의 사다리’가 곳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러면 답답한 학교도 시원한 해답을 저절로 찾을 것이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미국#공교육#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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