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줄줄 새는 양육수당… 국내 없는 아이에 月10만원씩 5년 지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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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여성, 中 살며 610만원 챙겨

올 1월 초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신입생 예비소집이 열렸다. 70여 명의 예비 초등생이 엄마 손을 잡고 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A 군(7)이 보이지 않았다. 예비소집에 불참한다는 부모의 연락도 없었다. 예비소집 후에도 부모와 연락되지 않았다. 아동학대나 실종 가능성을 우려한 학교 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A 군의 소재 확인을 요청했다. 경찰은 A 군의 주소지 등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A 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A 군을 봤거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해외에 나간 기록도 없었다.

○ 출생부터 미스터리

A 군의 어머니는 중국동포 출신 김모 씨(45)다. 김 씨는 1997년 한국인 정모 씨(56)와 혼인신고를 했다. 2012년 2월 김 씨는 아들을 낳았다며 주민센터에 출생신고를 했다. 바로 A 군이다. 중국 광둥(廣東)성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했다. 2013년 4월 김 씨는 주민센터에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2017년 12월까지 매달 10만∼20만 원의 수당이 김 씨 계좌로 꼬박꼬박 입금됐다.

경찰이 눈여겨본 건 바로 이 계좌다. 양육수당이 빠지지 않고 지급된 걸 확인하고 김 씨 계좌를 추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놀라온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다. 김 씨는 2013년 중국으로 출국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5년간 입국 기록이 없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21년 전 결혼이 가짜라는 사실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위장 결혼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최근 남편 정 씨의 소재를 확인하고 허위 혼인신고 혐의(공정증서 부실기재행사)로 입건했다. 정 씨는 경찰에서 “김 씨는 혼인신고 때 얼굴을 본 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제 경찰은 A 군의 출생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김 씨가 출생신고까지 허위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신고서의 위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5일 “A 군이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 아래 수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 브로커 통한 조직적 범죄 가능성

A 군의 존재도 불확실한 가운데 어머니 김 씨까지 5년가량 해외에 있었지만 양육수당은 매달 빠짐없이 지급됐다. 영등포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5년간 A 군 앞으로 지급된 양육수당은 총 610만 원이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구청 공무원은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에야 사실을 알게 됐다. 공무원은 경찰 조사에서 “문제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절차대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양육수당 지급 대상은 84개월 미만의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이다. 신청서와 보호자 이름의 통장 사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만 있으면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 및 수당 지급 과정에서 서류 말고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없다.

대상 아동이 해외에 장기 체류를 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9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할 경우 양육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하지만 출입국 기록이 없는 경우 보호자의 자진 신고 외에는 이를 적발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중 국적인 경우 외국 여권을 사용하면 장기 체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편법을 안내하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양육수당을 신청하고 수령하는 과정에 전문 브로커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비슷한 사례를 찾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출입국 기록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지만 일일이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답했다.

※ 5년간 양육수당 받은 A 군은 어디에…

1997년 중국동포 김모 씨, 한국 남성과 혼인신고 후 국적 취득→위장 결혼으로 확인
2012년 2월 김 씨, 주민센터에 A 군 출생신고→출생증명서 첨부(위조 여부 확인 중)
2013년 4월 김 씨, A 군 양육수당 신청
2013년 하반기 김 씨, 중국으로 출국
2017년 12월 양육수당 종료→매달 10만∼20만 원 57회 지급
2018년 1월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A 군 불참→경찰에 소재 파악 요청
2018년 2월 경찰, 양육수당 입금계좌 추적→김 씨 출국 확인. A 군 출입국 기록 없음
2018년 4월 김 씨의 위장 결혼 상대 남성 입건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양육수당#조선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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