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어제 “최근 주요 지표의 부진이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경기 하강을 ‘우려’했고, 한 달 전에는 성장세가 점차 둔화될 ‘가능성’을 시사한 데서 성큼 나아가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민간 연구기관도 아닌 국책 기관이 이런 판단을 내놨다는 것은 정부에 요란한 경고음을 울린 것과 다름없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외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도 경제 상황이 당초 소비절벽이나 고용절벽을 걱정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라고 느닷없이 ‘경제 낙관론’을 폈다. “재정 조기집행 등의 정책효과가 본격화하면 경기 개선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KDI 분석과는 정반대의 발언까지 했다.
국민의 경제 불안 심리를 달래고 희망을 주기 위한 대통령의 배려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출과 국내총투자율 등 10개 경제지표에 일제히 적신호가 켜지는 등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졌다는 그제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와도 동떨어진 인식이다. 안종범 경제수석이 2일 “부진했던 경제지표가 내수 회복세를 바탕으로 2월 이후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브리핑한 것을 보면, 참모들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지도 의문이다.
4·13총선이 가까워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경제 실패’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는 분위기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어제 “(정부가) 경제 실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국민에게 알리면서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전환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일본처럼 한국도 ‘잃어버린 20년’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심판론’으로 선거를 몰고 갈 태세다.
박 대통령은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위기를 맞은 비상상황”이라며 경제활성화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국회 심판론’을 강조한 바 있다. 불과 두 달도 안 돼 대통령의 경제인식이 위기에서 낙관으로 바뀐 이유가 총선에서의 경제 심판론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위험하다. 경제 상황과 정책을 놓고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상대 탓만 하면서 국민을 골병들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선거용 낙관론을 펼 것이 아니라 정부가 비상한 경제 상황 관리에 돌입하도록 독려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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