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반지의 제왕’팀도 반했다… ‘광명’ 찾은 40년 폐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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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명소 탈바꿈 ‘광명동굴’

광명동굴 내부는 17가지 테마 콘텐츠로 꾸며져있다. [1]광물을 캐던 광부들이 쓰던 광차를 비롯해 폐광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물건들이 곳곳에 소품처럼 전시돼 있다. [2]황금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황금폭포가, [3]와인셀러와 시음장이 있는 와인동굴에서는 100여 종의 와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4]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장식된 ‘바람길’은 ‘빛의 공간’과 함께 연인들이 가장 걷고 싶어하는 길 중의 하나. [5]‘소원의 벽’에서는황금패에 직접 소원과 다짐을 적어 걸어놓을 수도 있다. 광명=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광명동굴 내부는 17가지 테마 콘텐츠로 꾸며져있다. [1]광물을 캐던 광부들이 쓰던 광차를 비롯해 폐광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물건들이 곳곳에 소품처럼 전시돼 있다. [2]황금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황금폭포가, [3]와인셀러와 시음장이 있는 와인동굴에서는 100여 종의 와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4]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장식된 ‘바람길’은 ‘빛의 공간’과 함께 연인들이 가장 걷고 싶어하는 길 중의 하나. [5]‘소원의 벽’에서는
황금패에 직접 소원과 다짐을 적어 걸어놓을 수도 있다. 광명=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천장에서 뚝뚝 물이 떨어지는 시커멓고 음습한 공간. 물기로 질퍽질퍽한 바닥이 헤드램프와 손전등의 불빛에 번들거렸다. 구석에 쌓여 있는 낡은 대형 드럼통에서는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올라왔다. 새우젓 저장고로 쓰이던 폐광의 몰골은 서늘한 지하 광산의 공기만큼이나 오싹했다.

“가능성이 보인다. 이거 물건 되겠어. 해 봅시다.”

우비에 고무장화 차림으로 구석구석을 살피던 양기대 광명시장이 이렇게 말했을 때 선뜻 호응하고 나선 사람은 없었다. 이후 5년. 40여 년간 버려져 있던 폐광은 하루 2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광명동굴이라는 이름은 이제 특정 지역의 동굴명(名)을 넘어서는 테마관광의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다.

동굴 벽을 뚫고 나오는 용

광명동굴은 2011년 개장 이래 연신 기록을 갈아 치우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 왔다. 무료로 개장한 이후 입소문을 타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지난 한 해에만 46만 명이 방문했다. 올해 4월 유료로 전환한 이후에도 6개월 만에 70여만 명을 끌어들였다. “메르스 여파가 아니었다면 올해 말까지 100만 명 기록 달성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광명동굴은 다른 자연 동굴과 달리 폐광을 개발한 인공 동굴이라는 점에서 단연 눈에 띈다. 1912년부터 금 은 동 아연 등을 캐던 금속 광산으로, 전성기 때에는 500여 명의 광부들이 하루 250t의 금속을 캐냈다는 기록이 있다. 지하 240m 깊이까지 8개 층으로 채굴된 광산 곳곳에 뚫린 갱도는 총길이 7.8km에 넓이는 3만1400m²에 달한다.

1972년 큰 홍수로 광산 입구에 쌓아 왔던 돌가루들이 쓸려 나가면서 크게 훼손된 이후 광산은 문을 닫았다. 섭씨 12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지하 광산에 새우젓을 보관해 두려는 소래포구의 상인들만 간간이 오갔다. 폐광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지역경제의 활로를 찾던 사람들의 야심 찬 발걸음이 닿지 않았더라면.

물을 퍼내고 바위 속으로 2m가 넘는 볼트를 박아 가며 탈바꿈시킨 광명동굴은 17가지의 테마와 볼거리로 꾸며져 있다. 입구를 장식하는 다채로운 색 조명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굴 아쿠아리움과 3차원(3D) 입체 영화관, 350석 규모의 지하 공연장, 귀신의 집, 판타지관, 광산 박물관 등을 여유 있게 모두 둘러보려면 1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판타지관의 한쪽 벽에 설치 마무리 단계인 커다란 용은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최신 콘텐츠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제작한 뉴질랜드 ‘웨타워크숍’과 합작해 꾸미는 판타지관에는 광명시 대표단이 뉴질랜드에서 직접 사 갖고 들어온 골룸상과 간달프의 지팡이가 전시돼 있다.

황금의 여신, 황금궁전, 황금방과 황금폭포 같은 콘텐츠는 광명동굴이 과거 수백 kg의 금을 캐냈던 곳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소원을 적어 걸어 두는 ‘소망의 벽’에도 수천 개의 황금패가 달랑거리고 있었다. 금을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을 특별히 겨냥한 기획이다. 실제 3000명의 대만 관광객이 방문 예약을 마쳤다고 한다.

와인은 동굴의 또 다른 핵심 포인트 중 하나. 섭씨 12도의 저온 항상성이 유지되는 동굴은 와인을 보관하는 데 최적의 장소다. 관람객들이 와인을 시음, 구입하는 와인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와인도 취급하고 소개해 달라”는 문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현재까지 100여 종의 국내외 와인 3만4000병이 여기서 팔려 나갔다.

업그레이드 2단계, 새로운 도약


“예술 총감독요? 그런 거 없는데요. 초기에 전문 디자이너 같은 사람들은 쓸 생각도 못 했죠. 이게 모두 저희가 그냥 아이디어를 내서 하나씩 만들고 설치한 겁니다.”

17개에 이르는 형형색색의 콘텐츠를 어떻게 채웠느냐는 질문에 광명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마추어들이 머리를 맞대고 여기까지 끌어 온 ‘작품’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동굴 해설사와 소믈리에를 비롯해 2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새로 창출했다는 점도 이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성과다.

폐자원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던지는 ‘친환경 메시지’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존재 자체가 폐광. 입구를 장식한 벤치와 조형물은 광산에서 나온 폐자재와 고철, 목재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와인 레스토랑에서 쓰는 안주 접시, 납작한 와인병 모양의 탁상시계 등은 모두 와인병을 녹여서 만든 재활용품이다. 광산 바로 옆의 쓰레기소각장 부지는 주차장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인근에는 업사이클센터를 설립했다. 쓰레기와 폐품을 이용해 만든 각종 디자인 제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광명동굴은 최근 경기도 정책오디션에서 1등으로 당선돼 100억 원의 지원금을 타 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2단계의 도약을 시작할 시점”이라며 관계자들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였다. 동굴 인근을 테마파크 단지로 개발하고 아직 손대지 않은 지하 2∼8층의 갱도를 추가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들이 본격적인 검토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암반수를 개발해 가칭 ‘광부의 샘물’로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심재성 광명시 홍보실장은 “보존의 필요성 때문에 건드릴 수 없는 자연 동굴과 달리 광명동굴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넓히고 키우고 손을 대서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4월에는 라스코 동굴벽화전이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광명동굴을 다녀간 주한 프랑스 대사가 먼저 제안해 성사된 사업으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향한 꿈

광명시는 장기적으로 광명동굴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제주도의 용암동굴 같은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서 인정받겠다는 도전이다. 폐광을 관광지로 변화시킨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 독일의 촐페라인 광산이 이미 등재돼 있는 만큼 불가능한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과 5년 전 개발이 시작된 광명동굴은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의 성모 마리아상이나 소금 샹들리에 같은 역사적인 예술작품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수도권 내 유일한 광산이라는 특수성 외에 일제강점기 강제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광산으로 몰려든 광부들의 한이 서려 있다는 점 등은 역사성을 검증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게 광명동굴 측 설명이다. 검댕으로 벽에 쓰인 ‘고향’ 같은 글씨들은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광명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만든 위안부 소녀상이 올 8·15 광복절에 동굴 입구에 세워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곳을 찾기도 했다.

깊숙한 동굴은 6·25전쟁 당시 마을 주민들의 피난처로도 사용됐다. 폭격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던 만삭의 아낙네들은 그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굴댕이’라고 불렸다. 양기대 시장은 “광명동굴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되살려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국내를 넘어선 세계적 명소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폐광#광명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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