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1cm와 대세

이현두기자 입력 2015-10-13 03:00수정 2015-10-1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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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인천 송도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인터내셔널팀의 닉 프라이스 단장은 “프레지던츠컵이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 우리는 짜릿한 승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회를 의식한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다. 이번 대회는 마지막 30번째 경기에서 그것도 마지막 18번홀에서 우승팀이 가려졌다. 이보다 더 짜릿할 수는 없었다. 대회 개막 전까지 이처럼 접전이 벌어질 줄은 미국팀은 물론이고 인터내셔널팀도 예상 못 했다. 26번째 경기 안팎에서 우승을 확정 지을 것으로 낙관하며 자신의 아들을 마지막 30번째 경기에 내보냈던 제이 하스 미국팀 단장이 미국팀의 우승을 확정 지은 아들의 승리에 북받쳐 눈시울을 붉힐 만했다.

인터내셔널팀의 선전에 대해 프라이스 단장은 “배상문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세계 랭킹 88위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24명의 선수 중 순위가 가장 낮은 배상문은 단장 추천 선수로 선발돼 대회 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배상문은 2승 1무 1패로 깜짝 활약했다. 마지막 날 경기 마지막 18번홀에서 통한의 ‘뒤땅’으로 진 배상문에 대해 프라이스 단장은 “자신 때문에 팀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알려주고 싶다. 우리 팀이 더 잘했다면 마지막 홀 이전에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팬들에게도 “배상문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프라이스 단장과 팬들의 위로에도 정작 배상문은 마지막 날 경기의 아쉬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팬들의 짐작과는 달리 18번홀의 실수보다는 12번홀의 퍼팅을 더 아쉬워할 것이다. 마지막 날 싱글매치에서 빌 하스와 11번홀까지 무승부를 이뤘던 배상문은 12번홀에서 버디 퍼트를 놓쳤다. 놓쳤다기보다 홀이 외면했다고 하는 게 맞다. 홀을 스치고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 하스는 배상문보다 조금 더 먼 거리에서 퍼트한 공이 홀로 빨려 들어가며 버디를 낚았다. 배상문이 퍼트한 공이 단 1cm만 홀 안쪽으로 갔다면 이 홀에서 두 선수의 희비는 갈리지 않았다. 그랬다면 18번홀에서 배상문의 뒤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1홀 차로 뒤져 18번홀에서 이겨야만 경기를 비길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하는 샷과 17번홀까지 무승부를 이뤄 마지막 홀에서 비겨도 되는 상황에서 하는 샷은 실수를 할 확률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날 배상문에 앞서 18번홀에서 90cm의 짧은 버디 퍼트를 놓친 아니르반 라히리(인도) 역시 1cm에 울었다. 17번홀까지 미국팀의 크리스 커크와 무승부를 이룬 라히리는 18번홀에서 커크가 자신보다 훨씬 먼 5m 버디 퍼트를 남겨 놓아 최소한 무승부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커크가 버디를 기록한 뒤 한 라히리의 버디 퍼트는 홀을 스치고 나왔다. 역시 1cm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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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경기가 벌어진 코스의 전체 길이는 7380야드(약 7160m)였다. 골프는 누가 더 적은 수의 샷으로 공을 홀에 넣느냐를 겨루는 거리의 경기다. 따라서 같은 골프채로 더 멀리 공을 보내는 장타자가 유리하다. 하지만 정작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주 작은 거리의 단위인 1cm다. 그래서 ‘대세에 지장 없다’는 말은 스포츠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것이 대세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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