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없는 아빠… 찜통 아동센터가 놀이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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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폭염 힘겨운 이웃들 2題… 저소득 - 장애가정 자녀들

방학과 휴가철이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놀러가지 못한 어린이들이 5일 서울 은평구 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빠듯한 운영비 때문에 센터 측이 에어컨을 계속 켜주지 못해 아이들은 땀을 흘려가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방학과 휴가철이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남들처럼 놀러가지 못한 어린이들이 5일 서울 은평구 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빠듯한 운영비 때문에 센터 측이 에어컨을 계속 켜주지 못해 아이들은 땀을 흘려가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9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단지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10여 명이 그네를 타거나 카드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다.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은정(가명·11) 양은 “아빠는 출장 가고 엄마는 집에 누워 있어서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중”이라며 “더울 땐 대형마트에 가지만 오늘은 문을 닫아 놀이터에 왔다”고 말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휴양지마다 가족 단위 피서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이런 찜통 같은 도심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저소득층이나 장애가정 아이들이다.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와중에도 부모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거나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간 아이들은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나 땡볕이 내리쬐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달 초 본보 취재팀이 찾은 노원구 하계동의 한 지역아동센터에는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실내는 에어컨이 고장 나 열기가 가득했지만 이들은 이마와 목덜미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 채 게임에 열중했다. 이들은 저소득층이 몰려 있는 인근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구모 군(11)은 “일 때문에 항상 아침 일찍 나가는 아빠는 여름이면 더 바빠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이 있는 센터에 자주 온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은평구의 한 지역아동센터도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합창수업을 듣고 있던 김모 양(7)은 “더울 때면 밖에 있기보단 여기서 애들하고 함께 수업 듣고 술래잡기도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양천구의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여름방학이면 오전 9시 30분부터 몰려드는 아이들을 위해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추가로 개설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아동센터는 여름방학이면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몰려드는 아이들로 북적이지만 여건이 좋지는 않다. 은평구 역촌동 센터 관계자는 “에어컨을 조금만 틀어도 한 달 전기요금이 3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아이들은 덥다고 하지만 운영비가 빠듯하다 보니 계속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아동센터마저도 문을 열지 않는 주말이면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적지 않다.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여름방학 프로그램 ‘희망나눔학교’를 진행 중인 비영리단체 ‘굿네이버스’의 조현 간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특히 여름이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많이 느끼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노아름 인턴기자 경희대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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