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세종대왕, 한자음의 표기 위한 발음기호로 한글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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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발명/정광 지음/508쪽·1만9800원·김영사
‘한글의 발명’을 쓴 정광 교수

한글 연구 책 낸 정광 고려대 교수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한글 연구 책 낸 정광 고려대 교수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위대한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완벽한 글자를 만들었다.”

‘한글’을 생각할 때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다. 하지만 2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정광 고려대 명예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오랜 기간 한글을 연구해온 그는 한글의 기원과 제정 동기를 담은 이 책을 최근 펴냈다.

“‘한글’이란 명칭은 1933년 주시경 선생이 지은 겁니다. 원래 언문(諺文)으로 불렸죠. 무엇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한자음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로 만든 겁니다.”

기존의 정설을 뒤집는 파격적 주장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졌다.

“고려 전기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배운 한문으로 중국인과 소통했죠. 하지만 원대(元代) 이후 북경의 한어(漢語) 발음이 우리가 써오던 전통 한자음과 달라졌어요. 중국 사람과 소통이 안 됐죠. 그래서 우리가 쓰던 한자음을 교정해 ‘동국정운’이란 한자음을 만든 겁니다. 이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발음’이란 의미에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요.”

세종이 이 발음기호로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다고 보고 연구에 몰두해 한글을 완성시켰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월인석보’ 옥책을 근거로 ‘월인석보’는 세조가 아닌 세종 때 먼저 간행됐으며 여기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붙여 간행했다고 주장했다.

“건국 초기 조선 입장에서는 한자의 표준음을 정하는 게 중요했어요. 표준 한자음을 기준으로 과거시험을 열어야 했지요. 중국에서 이런 방법으로 자신들의 추종 세력에게 과거를 보게 했고 통치 계급을 물갈이했어요. 조선도 같은 맥락이었죠.”

그는 “한글은 북방 민족의 전통을 이어 만든 문자”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북방 민족은 한자로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기가 어려워 표음 문자를 만들어 썼어요. 티베트 서장 문자, 10세기 거란 문자, 12세기 금나라의 여진 문자가 그래요. 14세기 원나라는 파스파 문자를 만들어 한자음을 기록했죠. 한글도 이들 문자의 영향을 받았어요. 서장 문자, 파스파 문자, 한글 모두 첫 글자가 ‘ㄱ’, 즉 ‘k’ 발음 문자로 시작됩니다. 또 kh, g, ng 발음, 즉 훈민정음의 ㄱ, ㅋ, ㄲ, ㆁ 순서로 문자를 제정했어요.”

한글 창제에 불가의 학승들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들 문자가 인도 음성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의 조음음성학이 팔만대장경에 포함돼 고려와 조선에 유입되면서 불가의 학승들이 음성학을 공부했다. 정 교수는 파격적인 주장임을 인식하는 듯 “책을 내면서 이민 갈 생각도 했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한글의 위대함이 줄어들진 않아요.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서양에서 20세기가 돼서야 발전한 조음음성학과 구조음운론보다 500년이나 앞서 이 같은 언어학 이론을 동원해 한글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정 교수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글과 한글 연구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말 세종대왕이 어느 순간 머리에서 ‘ㄱ’, ‘ㄴ’이 딱 떠올랐을까요. 그런데도 한글에 대해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면 학계에서 맞아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학문의 자유’라고 봐요.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연구를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글의 신성불가침에서 벗어나야 한글이 더 발전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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