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金 무리한 지시” 불평하다 보위부 감시망 걸린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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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공포 통치’]

《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이후 사라진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30일경 처형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부 서열 2위인 그는 지난달 13∼20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면담하고 제4차 국제안보회의에 참석해 “미국과의 핵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다. 그의 귀국 후 북한 권력 핵심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 “김정은에 대한 불만, 감시정치에 걸렸다”

국정원에 따르면 현영철은 지난달 24, 2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주재한 북한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했다. 여기서 눈을 감은 채 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 27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했지만 다음 날부터 사라졌다. 지난달 30일 김정은이 훈련일꾼대회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군부 서열 1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3위인 이영길 총참모장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위원은 “국정원은 현영철이 28일 사라져 29일에 고문을 받고 30일에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2013년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 이후 최고위급을 숙청한 이유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시, 지시 불이행, 훈련일꾼대회에서 눈을 감고 졸았던 불충·불결죄, 모반죄 등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현영철 처형과 관련해 “핵심 간부들 사이에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현영철도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김정은 지시에 이견을 나타냈다가 북한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권력 통제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감시망에 걸렸다는 것이다. 현영철 숙청을 주도한 두 기관은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도 맡았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지난해 육해공 고위급 간부들에게 엎드려 쏴 사격, 수영, 전투기 조종을 시키면서 군 간부들 사이에 ‘손자 같은 사람 앞에서 당했다’는 모멸감이 퍼졌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집권 4년 차인 김정은이 실적을 쌓기 위해 건설 사업 등에서 무리한 목표를 요구해 군부 내에 불만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현영철이 그런 불만을 표출했다는 얘기다.

○ 김정은 러시아 방문 취소와 현영철 숙청

국정원은 김정은이 갑작스레 “북한 내부 사정”을 이유로 9일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불참한 것이 현영철 숙청 때문일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이 현영철에게 러시아제 방공미사일 S-300을 얻어오라고 지시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간부들에게 회의 시간에 졸지 말라고 수차례 지시했다”며 “특수군단장인 최경성이 졸다가 걸려 상장(한국의 중장)에서 소장(준장)으로 강등됐고 김영철 정찰총국장 역시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졸다가 숙청됐다기보다는 미운털이 박힌 상태에서 조는 모습까지 더해져 처형으로 이어질 정도로 처벌이 강화됐을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은 “지난 6개월 동안 김정은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핵심 간부들이 숙청 등으로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2013년 장성택 처형 전인 11월 30일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삼지연을 찾은 이른바 ‘삼지연 8인방’의 일원이자 ‘김정은 시대의 신실세’로 떠오른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도 포함돼 있다. 삼지연 8인방은 권력 핵심인 조직지도부 출신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 대남비서 등이 포함돼 있다.

○ “황병서도 떠는 숙청의 공포”

북한 고위 간부사회에 숙청의 공포는 마치 해일이 몰려오듯 다가오고 있다.

국정원은 “김정은 지시와 정책 추진에 대한 이견 제시, 불만 토로, 비리, 여자 문제로 간부들을 처형하면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며 “숙청이 이어지자 고위직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김정은에게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은 “황병서나 권력의 또 다른 핵심인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연준마저도 숙청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단기적으로는 숙청과 처형을 통해 체제가 안정되겠지만 측근의 반발이 이어지고 처형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 숙청과 처형을 주도하는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사이에서도 권력 다툼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권력 다툼이나 내부 균열 징후는 안 보인다”고 했지만 이 상태가 오래간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현영철 숙청이 북한 군부 충성 경쟁을 부추겨 대남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한국 해군 함정에 대해 조준타격을 위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윤완준 zeitung@donga.com·고성호 기자
#현영철#김정은#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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