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모바일만으로 1주일 살아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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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한 사람이 1대 이상의 모바일 기기를 갖고 있는, 바야흐로 모바일 시대다.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는 컴퓨터를 할 때에만 접속이 가능했던 인터넷 세상을 출퇴근 버스, 화장실, 침대에서도 만날 수 있게 했다. 모든 생활과 산업의 중심에는 모바일이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하는 시대가 곧 올 것만 같다. 그래서 도전해봤다. 모바일 기기로만 일주일을 지내보기로 했다.

난 정보기술(IT) 기기에 익숙한 ‘얼리어답터’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2013년 산업부로 발령을 받으면서 IT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남들보다 뒤늦게 보고 배운 편에 속한다. 처음으로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물을 남긴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번 체험을 시작한 것은 빠르게 진화하는 모바일 기기와 서비스들이 실제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해 12월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모바일 온리(Mobile Only)’를 선언했다. 지금까지 모바일을 우선시하는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 시대였다면 이제는 모바일만으로 모든 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번 체험을 통해 그 시대가 언제쯤 올 수 있을지 가늠해 보고자 했다.  
▼ 독서-쇼핑-영화감상 문제없지만… 문서 작성은 버벅 ▼

김호경 기자, 모바일만으로 살아본 1주일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지인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A 씨(29)는 “스마트폰으로 결재서류를 올리고 휴가 신청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IT 회사를 다니는 B 씨(30)는 “회계 부서에 영수증을 제출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영수증을 찍어 전송한다”며 “노트북 없이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모바일 기기 덕분에 업무와 일상이 훨씬 편리하고 단순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각자 유용하게 쓰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추천해 줬다. 난 이 앱들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설치한 후 미리 회원 가입을 하고 필요한 인증 절차까지 모두 마무리했다.

체험 기기는 스마트폰 ‘아이폰5’와 평소 집에서만 쓰던 태블릿PC ‘아이패드’였다. 체험 전날 해외 출장을 갈 때에나 들고 다니던 보조배터리도 가방에 넣었다. 충전할 곳이 마땅치 않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또 직업 특성상 문서 작성이 잦은 점을 감안해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도 함께 챙겼다.



스마트폰으로 기사 작성하기 이틀 만에 ‘포기’


첫날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스마트폰 기상 알림을 듣고 일어났다. 2010년부터 쭉 써온 기상 앱(알람몬)이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태블릿PC로 오늘 자 신문을 훑어봤다. 지면보기가 가능해 종이신문을 보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신문을 펼치고 넘기려면 통상 양쪽 손을 모두 써야 하지만 태블릿PC에서는 한손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집을 나서면서 평소 습관대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 스트리밍 앱(비트)을 눌렀다. 음악 감상 수단이 MP3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건 10년도 더 된 일이다. 초기에는 스마트폰에서도 음악을 내려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라디오처럼 실시간으로 흘러나온다. ‘무슨 노래를 내려받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어진 셈이다. 모바일 쿠폰으로 구입한 커피를 들고 기자실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여기고 스마트폰으로 기사 작성하기에 도전했다. 과거 노트북 배터리가 다 떨어졌거나 이동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취재 내용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애용하던 문서 작성 앱(에버노트)을 켰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자꾸 오타가 났다. 복사하기, 붙여넣기 등 노트북 단축키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오타를 수정하고 단축키 없이 터치로 작업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20분 동안 목표 분량인 원고지 3장(600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노트북에서 작업했다면 이미 기사를 마감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에서 기사 쓰기를 포기하고 스마트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했다.

오타가 줄고 작성 속도가 한결 빨라졌지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통상 기자들은 취재 자료를 확인하면서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위해 노트북 화면에 문서 및 인터넷 창 여러 개를 한꺼번에 띄워놓는다. 예컨대 노트북 화면 왼편에는 취재 내용이 적힌 창을 띄워놓고 오른편에서 문서 작성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태블릿PC 화면에서는 두 개 이상의 창을 한 화면에서 보는 게 불가능했다. 특히 기사 작성을 마치고 오타가 없는지 확인하려면 여러 앱을 켜고 끄기를 반복해야 했다. 마우스 없이 작업하는 것도 까다로웠다. 문장을 다듬으려면 커서를 자주 이동해야 한다. 터치만으로 작업하려니 자꾸 엉뚱한 곳이 눌러졌다.

다음 날 스마트폰으로 기사 쓰기에 재도전했지만 전화가 오거나 알림이 울리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불편함을 깨닫고 포기했다. 전날보다 기사 분량은 2배가량 많았지만 시간은 더 촉박했다. 기사 작성을 할 때에만 노트북을 사용하기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만에 노트북을 꺼내 기사를 썼다.

맞춤형 서비스로 개인비서 역할 ‘톡톡’

기사 작성할 때를 제외하면 모바일 기기가 노트북보다 편리할 때가 더 많았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자동화기기(ATM)나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은행에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 은행 앱에서는 웬만한 은행 업무는 처리할 수 있었다. 맞춤형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도 모바일 기기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다. 올 1월부터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가계부 앱(후잉)이 대표적이다. 통장별 잔액과 보험료, 휴대전화 요금 등 월 고정 지출을 한번 입력해두기만 하면 매월 자동으로 입력된다. 스마트폰을 통해 매일 지출한 내용을 적기만 하면 남은 잔액, 항목별 지출액 등 여러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정 관리 앱(선라이즈)에는 중요한 일정을 입력하기만 하면 까먹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알림을 보낸다.

모바일 명함관리 앱(리멤버)은 모바일 기기에서만 쓸 수 있는 서비스 중 가장 유용했다. 이전까지는 취재원들의 명함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 직책 등 개인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앱을 실행하고 명함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5분도 안 돼 모든 명함 정보가 입력됐다. 스마트폰은 잠들지 않는 개인비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서비스는 모바일 파일전송 앱(샌드애니웨어)이었다. 이 앱은 휴대용저장장치(USB) 없이 고화질 사진이나 동영상 등 대용량 파일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취재 사진을 찍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바일 메신저로 사진을 전송하면 해상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e메일을 쓴다. 하지만 이 앱에서는 원본 사진의 해상도를 유지하면서 e메일 첨부 때보다 빠른 전송이 가능하다. 실제 350MB(메가바이트)짜리 파일을 전송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5분. 같은 파일을 e메일로 전송해보니 총 19분이 걸렸다.

매일 집에서 맨손으로 운동하는 방법을 약 10분짜리 동영상으로 알려주는 운동 코칭 앱(핏스타)과 콜택시 앱(이지택시)도 유용했다.

가장 핫한 ‘결제 앱’은 편리하지만 막상 ‘글쎄’


기대에 못 미친 서비스도 있다. 최근 국내외 IT 기업들의 너나할 것 없이 진출을 꾀하는 모바일 결제 관련 서비스는 관련 주목도에 비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다음카카오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모바일지갑 앱(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에 가입한 뒤 10만 원을 충전했다. 충전금액 한도 내에서 모바일 쇼핑 결제를 하거나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송금이 가능했다.

최대한 뱅크월렛 카카오로 물건을 사려고 시도했지만 일주일 동안 스타벅스 모바일 쿠폰 7장을 산 게 전부였다.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 술집 등 오프라인 매장 중 모바일 결제를 지원하는 곳이 없었다. 송금을 하려고 해도 돈을 받는 사람이 이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뱅크월렛 카카오로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쇼핑몰에는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현금과 신용카드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일주일간 체험한 결과 이미 획기적이고 편리한 모바일 서비스는 충분히 많았다. 다만 세대별 직업별로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는 속도가 다른 듯했다. IT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지인과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카카오톡만 쓰는 부모님만 비교해도 그 차이는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모바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꼼꼼한 문서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없거나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라는 미국 공상과학소설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 오늘날 모바일 시대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모바일#스마트폰#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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