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好朴가족’ 정윤회 회장님의 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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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내가 정윤회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과거 정권의 고위직에 있던 한 인사가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가 박 대통령의 개인 심부름을 한다는 소문을 전했다. 대통령이 “이 사람 어떤지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면 정 씨가 수고를 해준다는 것이다. 혼자 일하기도 하고 일이 많으면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권력 3인방이 거든다고 했다. 총무비서관이면 대통령 집사이고 대통령부속실장도 심부름을 많이 하니 대통령이 이런저런 잡일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해석이 더 솔깃했다. 대통령이 배신 트라우마가 있어 이중으로 체크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심부름이 단순한 심부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정 씨는 비서실장이었고, 서울 삼성동에 칩거할 때는 집사 역할을 했다는 뒷얘기도 누군가 했다. 세상사 인연이 오묘했다. 권력의 속살을 도마에 올려놓고 누구는 허수아비고 누구는 숨은 실세니, 밑도 끝도 없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지만 권부(權府)에서 실제 돌아가는 사정의 언저리를 맴돌다 말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시사저널에 정윤회가 박지만과 파워게임을 한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카더라’ 기사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만만회’가 비선이라고 떠들었을 때 조어(造語) 능력이 뛰어난 고단수 정치인의 말장난으로 여겼다. 이재만 박지만 정윤회가 국정을 말아먹고 있다는데, 뭘 말아먹는다는 건지 실체가 안 보였다. 그래도 만만회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동네 강아지 이름처럼 불렸다. 박지만이야 대통령 친동생이고, 이재만은 총무비서관이니 그렇다 쳐도 왜 정윤회가 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는 정윤회를 십상시의 우두머리로 묘사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찌라시를 모은 것이라고 해명한 것은 누워 침 뱉기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정원 금감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 엘리트들이 내 혈세를 받아 찌라시나 생산하고 있었단 말인가.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참여정부에서도 특정 지역 출신 몇몇이 모여 실세인 양 거들먹거리며 호가호위(狐假虎威)한 그룹이 있었지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청와대에서 몇 명이 모여 앉아 밥 먹고 떠들어봐야 인사나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친한 몇 사람을 공기업에 밀어 넣은 정도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 핵심 인사는 “권력을 지근거리에서 보면 공식 조직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는 뒷전이고 대통령 핵심 측근 몇 명이 인사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청와대는 어느 정부보다 인사에서 실책이 많았다. 청와대 살림살이를 맡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인사위원회 멤버에 낀 것이 정상은 아니다. 박근혜 청와대가 노무현 청와대와 비슷한지, MB 청와대와 유사한지는 판단해 볼 문제다.

정윤회는 8월 13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라는 주제로 열린 음악콘서트에 박근혜 공식팬클럽 ‘호박가족(好朴家族·박근혜를 좋아하는 가족)’ 멤버들과 함께 참석했다. 청와대에서 협찬 요청 전화를 받은 대기업이 후원하고 CJ에선 고위 임원도 참석해 정 씨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재현 CJ 회장은 2심에서 3년형을 받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재계에서 ‘정 회장님’ ‘정 실장님’으로 통하지만 아무 직책이 없는 정윤회가 참석한 독도평화기원 행사에 청와대에서 왜 간여했는지 궁금하다. 이러니 오너가 감옥에 있는 다급한 대기업이 정 회장에게 서로 줄 대려고 하지 않겠나.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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