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베, ‘메구미 진상’ 알고도 정치적 의도로 北-日교섭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일본 납북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의 정신병원에서 독극물이나 약물 과다 투여로 20년 전에 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관계자들과 한국의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메구미가 사망한 정신병원인 평양 49호 예방원 관계자 2명을 9월 11일 제3국에서 만나 증언을 듣고 공동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메구미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보고 북과 송환 협상을 벌여온 일본 정부는 북에 또다시 농락당한 셈이 됐다.

1964년생인 메구미는 1977년 니가타 시의 중학교에서 배드민턴 연습을 마친 뒤 실종됐다. 김정일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메구미 납북을 인정하고 이미 자살했다며 2004년 유골을 일본으로 보냈으나 DNA 검사 결과 다른 사람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극비 보고서에 따르면 메구미는 1994년 완전격리 병동에서 숨져 다른 시신 5구와 함께 야산에 매장됐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 같은 어제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공동조사에 관여한 일본 정부 인사 3명의 명함까지 첨부돼 있어 일본이 발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부인하는 것은 메구미 사건이 갖는 폭발력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메구미는 일본이 주장하는 납북 피해자 12명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메구미의 비참한 최후가 알려질 경우 대북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아베 신조 총리도 성난 민심의 질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5월 북한과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전면 재조사하고 일본의 대북제재를 해제키로 전격 합의한 바 있다. ‘북한 카드’로 북에 대한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키고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려 한다는 비판에도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아베 총리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집단적 자위권 강행으로 등 돌린 민심을 수습하고 장기집권의 발판을 다지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 드러난 진상을 보고받고도 북한과의 교섭을 계속했다면 정치적 목적으로 숨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메구미의 가슴 아픈 최후를 접하며 북의 인권 실태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납치문제대책본부를 두고 한 해 12억5700만 엔(약 118억 원)의 예산으로 납북자 해결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에게는 메구미의 남편 김영남 씨를 포함해 517명의 6·25전쟁 이후 납북자가 있다. 납북자 송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메구미#일본 납북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