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연병장 돌리고 갖은 욕설… 폭행 부추기는 간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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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윤일병을 구하라]
<下>인간 대접하는 군대로 ―관심병사보다 ‘관심간부’가 더 문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이었던 김지훈 일병(사망 당시 21세)은 지난해 7월 1일 새벽 생활관 3층 계단 난간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고려대 경제학과 1학년을 마친 뒤 지난해 2월 25일 입대한 김 일병은 자대에 배치받은 후 소위 ‘에이스’ 병사로 인정받아 5월 20일 단장 비서병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단장과 가까운 고위 간부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비서실 담당 간부인 A 중위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아버지 김경준 씨는 “아들이 이때부터 A 중위의 지속적인 질책과 얼차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일병은 사망 직전 면회 온 부모에게 “깜냥이 되지 않는 부관이 나를 너무 괴롭힌다”고 털어놨다.

A 중위는 김 일병이 자살한 후 군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그는 진술서에서 “6월 30일 오후 9시 20분부터 김 일병에게 얼차려를 주기 위해 완전군장을 시켜 연병장을 8∼10바퀴 돌도록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얼차려는 규정을 무시하고 보고도 없이 임의로 행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병영생활행동강령에 따르면 얼차려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한정돼 있다. 지정되지 않은 시간에 얼차려가 있었는데도 당시 생활관을 관리하고 있던 당직사관의 제지도 없었다. 사병들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징계위원회도 전혀 열리지 않았다. 이날 밤 얼차려를 받은 김 일병은 바로 몇 시간 뒤 새벽에 목숨을 끊었다.

김 일병 가족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자살은 A 중위의 책임이 크지만 군에서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 중위는 김 일병 사망 후 진술서를 통해 “정당한 벌칙이었다”고 주장했고 이에 군에서는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처리했다. 이후 가족들에게는 사망 보상금 500만 원이 주어졌다.

사병 간 폭행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문제 간부 관리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군 간부의 존재는 병사들의 자살, 탈영 및 타 병사에 대한 폭행 사건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윤 일병 사건의 경우에도 유일한 간부였던 하사가 주범인 병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가혹행위에 가담했다. 2012년 7월 입대해 육군 모 사단 의무중대에 배치됐던 임모 이병(22)에게 병사들과 함께 욕설을 한 것도 간부인 B 하사였다. 2006년 육군 제25사단 허모 이병도 C 중위 등에게 폭행당한 뒤 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부대 내 ‘문제 간부’들은 매년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군 내 대책은 전역시키는 것이 전부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국방부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군 내 문제 간부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에서 2010년 문제를 일으켜 군을 떠난 간부는 총 195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61명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총 206명이 군을 떠나 문제 간부 수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에 종사하는 현역 간부들은 ‘문제 간부’에 대해 군 차원의 대책을 요구했다. 육군 모 사단 간부 D 씨는 “간부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현재 군 내 대책은 전부 병사 위주로만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하사, 중사, 소위, 중위 등 초급 간부들은 병사들과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 정신연령은 병사들과 비슷하지만 계급에 따른 책임만 부과돼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D 씨의 지적이다. 하지만 현재 연대 단위로 1명씩 배치돼 있는 민간 전문 상담관들의 상담 대상은 전부 병사에게 맞춰져 있다. 또 장교들에 대한 심리치료는 바쁜 일과 등을 핑계로 간부 스스로 거부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공군 간부 E 씨는 군대 내 간부들 사이의 ‘내리 갈굼’ 문화가 병사들에게도 옮겨진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고위 간부들은 자연히 차기 진급을 생각해 조금이라도 실수가 발생하면 부하 간부들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경우가 많다”며 “간부들의 이런 성과 위주의 행태가 병사들에게 스트레스로 대물림되면서 폭행이나 탈영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윤일병 사건#군 가혹행위#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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