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월호 동영상에서 천사와 惡人을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선실에 있던 학생들의 동영상이 한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다시 보기 고통스러울 만큼 안타깝고, 뭉클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자 학생들은 착하게 “예”라고 대답했고 “절대 움직이지 말래”라며 서로를 챙겼다. 그들은 선실 안이 더 안전한 줄 알고 “갑판에 있던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걱정했다. 구명조끼가 없다는 친구에게는 “내 것 입어”라며 선뜻 양보했다. “선생님들도 다 괜찮은 건가”라면서 오히려 어른을 걱정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를 넘겨 배가 기울어지는 심각한 상황에서 한 학생은 다소 장난기 섞인 말투로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우리 ○○○씨 아들이 고합니다. 이번 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동생)야, 너만은 절대 수학여행 가지 마.”

그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설마 자신들을 버린 채 도망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선장은 뭐 하길래”라며 선장의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해경이 어제 공개한 동영상에는 이 무렵 팬티 차림의 선장 이준석 씨가 배 속에 갇힌 승객 300여 명의 생사(生死)는 아랑곳하지 않고 맨 먼저 해경 보트에 올라타는 모습이 잡혀 있다. 한 구조대원이 바로 옆에서 세월호의 구명벌을 작동시키려고 이리저리 애를 써보지만 이 씨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쳤다. 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항해사 한 명은 트레이닝복과 속옷 차림으로 구조를 기다리다 다시 선실로 들어가 겉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고 한다. 학생들을 구조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얘기는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넋을 기리기 위해 28일부터 서울광장 등 전국 각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빗속에도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주말인 그제까지 안산 올림픽기념관의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도 16만 명을 넘었다. 지금 국민은 아들딸을, 조카를 잃은 것처럼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세월호 관계자들과 정부에 대한 분노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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