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영일]4년前처럼… 무인기 음모론 불때는 좌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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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일 기자
손영일 기자
‘한국 정부의 자작극 아니냐’, ‘6·4지방선거를 노린 북풍(北風)이다’.

북한의 무인정찰기가 경기 파주시와 서해안의 백령도, 그리고 강원 삼척시에서 잇달아 발견되자 좌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런 음모론이 쏟아졌다. 한 좌파 매체 정치토론방에 올라온 ‘무인기 꼼수가 정말 웃기네요’란 글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 정부의 자작극으로 몰아세웠다.

‘자동항법장치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무선조종 모형비행기로 100km 이상의 비행 기술을 가진 대단한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속이려면 제발 똑바로 속여라. 1번 어뢰 속에서 가리비가 웃고 있다.’

“무인기 소동을 벌이며 주의를 딴 데로 돌아가게 해보려고 가소롭게 책동하고 있다”는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의 성명과도 너무나 흡사한 주장이다.

또 다른 좌파 매체에 실린 ‘무인기 사건, 제2의 천안함 사건 되나’란 외부 기고문은 몇 가지 의문점을 거론했다. 이어 “이런 의문들을 깨끗이 해결하지 않으면 이번 무인기 사건은 제2의 천안함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라고 볼 수 없듯이 무인기를 북한이 내려보냈다고 믿기 어렵다는 뉘앙스다. 이 글은 통합진보당 당원게시판에 그대로 게재됐다.

국방부의 정밀 조사 결과 무인기 부품 중에 ‘기용날자’란 북한말이 표기돼 있었다. 북쪽에서 날아왔다가 남한 영공을 비행한 뒤 다시 북쪽으로 날아간 비행경로와 무인기에 탑재된 카메라에 촬영된 내용도 제시됐다. 그러나 음모론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세력은 이런 근거들에 대해 애써 눈을 감는다.

4년 전 천안함 폭침이 발생했을 때도 각종 음모론이 판을 쳤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에 의해 천안함이 폭침됐다는 공식결과를 발표했지만 일부 야당 정치인들조차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조사단에 참여했던 군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객관적 증거를 들이대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며 “외부의 적보다 내부에서 흔들어대는 세력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번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북한 당국에 엄중 경고한다”며 “무모한 더이상의 군사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안보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는 진일보한 메시지다. 하지만 여전히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 숨어 무인기 음모론을 퍼뜨리는 행위는 비겁하다. 군 당국의 허술한 방공망 관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현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마저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이 무인기 공세를 통해 노린 남남갈등의 심리전에 놀아나는 행동인지 모른다.

손영일·정치부 scud2007@donga.com
#무인기#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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