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진서]연봉 협상, 도움이 필요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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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연봉제 적용을 받는 필자는 회사와 매년 계약을 갱신한다. 연봉협상은 사실 통보에 가깝다. 올해도 상사는 “다른 직원들은 다 한 번에 사인했는데…”라며 말을 줄였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봤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는 수밖에.

그래도 이 정도면 인간적인 대우다. 모 통신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대학 후배는 계약 만료 하루 전날 인사팀의 호출을 받았다. 새로운 연봉으로 제시받은 액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여기 사인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물었더니 인사팀 직원은 무표정하게 “내일부터 회사 안 나오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속으로 발끈했지만 문 밖에 다음 차례 직원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보고 참았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셋 중 두 곳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예전 호봉제에선 연차에 따라 월급이 조금씩, 계속 올라간다. 반면 연봉제는 개인 성과와 능력에 따라 매년 월급이 많이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 자본주의형 시스템이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하지만 일부 전문직이나 임원급을 제외하면 한국식 연봉제는 ‘무늬만 연봉제’인 호봉제다.

연봉제의 취지가 가장 잘 살아있는 곳은 프로스포츠 분야다. 박지성 류현진처럼 해외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뿐 아니라 국내 프로 선수들도 상당수가 전문 에이전트를 통해 연봉계약을 체결한다. 대리인을 쓰면 장점이 많다. 첫째, 협상은 협상의 전문가인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본인은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법률문제는 변호사에게, 세금문제는 세무사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번째 장점으로 인간관계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평소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하는 감독과 코치, 또 자신의 모든 신상을 꿰고 있는 인사팀 직원과 대면해 서로 불편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대리인을 썼을 때의 세 번째 장점은 고용주나 선수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생긴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에서 나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고용주도 마찬가지다. 제3자인 에이전트는 나의 시장가격을 매겨주는 이른바 ‘마켓 메이커’의 역할을 한다. 국내외 스포츠단들이 선수 연봉에서 높은 수수료를 떼어가는 에이전트들의 활동을 금지하지 않는 건 이들이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선수들의 만족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처럼 일반 직장인도 전문 에이전트에게 연봉 협상을 맡길 수는 없을까. 한 커리어서비스 회사 대표에게 물었다. 그는 회의적이었다. “프로야구 선수같이 ‘프로’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월급쟁이가 얼마나 될까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엔지니어 같은 전문직부터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직원에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연봉 에이전트가 생기면 당장 필자부터 협상을 의뢰하고 싶다. 아 물론, 회사가 허락한다면.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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