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할머니’ 결국 홀로 떠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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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외무부 근무’ 노숙자로 화제… 가족 안 나타나 무연고 봉안당 안치

권하자 씨가 2010년 말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SBS 화면 캡처
권하자 씨가 2010년 말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SBS 화면 캡처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권하자 씨(73·여)가 7월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 중구는 권 씨가 간암 투병 중 7월 12일 송파구 거여동 새희망요양병원에서 숨진 뒤 8월 경기 파주시 광탄면 ‘무연고 추모의 집’ 봉안당에 안치됐다고 10일 밝혔다. 권 씨는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역이나 길이 아닌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에서 밤을 보내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별칭으로 유명해졌다.

권 씨는 이화여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76∼1991년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근무한 사실이 알려져 2010년 말 화제를 모았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는 없었고 자매와는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씨가 2000년대 초부터 노숙을 시작한 뒤 패스트푸드점 외에 유일하게 적을 둔 곳은 종로구 새문안교회였다. 영어 성경 교실에 참석한 인연을 계기로 매일 오전 5시 교회의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

권 씨는 본인이 거리로 나온 사연을 궁금해한 이들이 물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이 모든 일상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고행’이다”라는 말만 남겼다고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에 따르면 항상 백발을 단정히 넘기고 다녔던 권 씨는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나를 잘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며 한동안 머리를 자르는 것을 거부했다.

권 씨는 올해 5월 말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 앞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7월 숨을 거뒀다. 당국이 권 씨의 가족에게 연락했지만 시신 인수 의사를 밝히지 않아 화장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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