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현직 경찰이 ‘대본’ 쓰고 망까지 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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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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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뚫고 금고에 구멍… CCTV 따돌리고… 발자국은 물로 지워… 영화 같았던 금고털이
공범과는 15년 ‘정보원’ 인연


현직 경찰관이 우체국 금고와 은행 365코너 현금지급기 절도 사건을 제안하고, 자신이 저지른 현금지급기 절도 사건을 형사 신분으로 수사하는 등 범죄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남 여수경찰서는 우체국 금고털이와 I은행 365코너 현금지급기 털이를 친구인 박모 씨(44·구속)에게 제안하고, 범행 현장에서 망을 본 혐의로 여수 삼일파출소 김모 경사(4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26일 밝혔다.

▶본보 10일자 A12면 참조…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범인 윤곽파악도 못해

김 경사는 9일 오전 2시경 박 씨가 전남 여수시 월하동 한 상가 내 우체국 금고를 산소용접기 등으로 절단한 뒤 현금 5200여만 원을 훔칠 때 망을 보고 26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다. 박 씨는 우체국으로 직접 들어가면 폐쇄회로(CC)TV 등에 찍힐 것을 우려해 옆 가게인 식당으로 침입했다. 우체국 금고는 식당과 붙은 벽 뒤에 붙어 있었다.

금고 털이는 지난달 23일 김 경사가 박 씨에게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 경사가 지난달 29일 방범순찰을 빙자해 우체국 내부와 금고 위치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박 씨에게 전달한 사실을 확인하고 공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박 씨 검거에 전직 경찰관의 제보가 작용한 것을 감안하면 또 다른 단서로 김 경사의 범행을 확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경사는 앞서 2005년 6월경 박 씨에게 여수시 미평동 I은행 365코너를 털 것을 제안했다. 김 경사는 당시 박 씨가 I은행 옆 음식점 방범창을 뚫고 침입해 365코너 뒤쪽 방화문과 2중 철문을 기계로 잘라내고 현금 870여만 원을 털어갈 때도 망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여수경찰서 강력팀 형사였던 김 경사는 I은행 365코너 절도 사건에도 수사반으로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경사가 모종의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365코너 절도 사건은 7년 반 동안 미제사건이 됐다. 김 경사는 1997년 여수 모 파출소에 근무할 당시 박 씨를 처음 만나 속칭 ‘망원’(정보원)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 씨가 족적을 물로 지우고, 상가 내 CCTV에 스프레이 래커를 뿌리는 등의 수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김 경사가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여수에서는 2005년부터 올해까지 벽이나 천장을 뚫고 침입해 금은방, 대형병원, 농협 365코너 등을 턴 절도 사건이 5건 이상 발생했지만 그동안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여수지역 절도 미제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캐고 있다.

한편 경찰청은 26일 김재병 여수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해당 보직에 인천지방경찰청 정재윤 생활안전과장을 보임하는 등 여수경찰서 간부 3명을 징계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여수우체국#금고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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