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미래로 2012 대학 탐방]“국내 최고로는 만족 못해… 글로벌 여성교육 허브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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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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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김선욱 총장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은 “2년 넘게 총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은 교육, 연구, 사회적 책임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닫고 있다”며 “이화여대가 미래사회의 변화를 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학이 되도록 역량을 더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은 “2년 넘게 총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은 교육, 연구, 사회적 책임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깨닫고 있다”며 “이화여대가 미래사회의 변화를 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학이 되도록 역량을 더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해 세계적 화학기업인 벨기에의 솔베이 본사를 방문했을 때 1911년에 찍은 과학자들의 단체사진을 봤어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남성 사이에 퀴리 부인이 홍일점이더군요. 이화에서 한국의 퀴리 부인을 만들어보라는 덕담을 듣고 희망을 다졌죠.”

김선욱 이화여대 총장은 그의 프로필로 추정한 인상과 달랐다.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대한민국 첫 여성 법제처장. 2010년 8월 이화여대 총장으로 취임해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총장실에서 만났을 때 김 총장은 법보다는 글로벌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에 몰두했다.

○ 세계 속의 이화를 생각하다

김 총장은 ‘Non nobis solum’이라는 라틴어를 좋아한다. ‘우리 자신만의 것이 아닌’이라는 뜻이다. 이화여대의 성과를 한국만이 아닌 세계와 나누어야 한다는 꿈이 녹아 있다. 국내 최고의 여대를 넘어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여대가 되겠다는 포부가 드러난다.

이를 위해 김 총장은 전 세계의 여성 인재를 모아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여성 인재를 선발해 전액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며 모국에 헌신할 여성 리더로 키우는 이화글로벌파트너십프로그램(EGPP)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이화-코이카 석사과정 △비정부 공익 부문의 여성 활동가를 대상으로 올해 시작된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EGEP)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김 총장은 “지금까지 이화여대는 수많은 남녀 공학과 경쟁하면서 여대이지만 우수한 대학이라는 부분에서 어필했다”면서 “앞으로는 여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우리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갈 때가 됐다. 여성의 관점에서 한국만이 아닌 세계를 위해 역할을 하는 글로벌 여성 교육의 허브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재학생의 글로벌 역량을 높이려는 노력도 주목된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일부 대학의 국제화 전략과 달리 질적으로 수준 높은 글로벌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그는 “현재 64개국, 829개 대학 및 기관과 교류하면서 외국 학생이 우리나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많이 열어 놓았다”면서 “우리의 글로벌 역량을 키움으로써 유능한 인재가 더이상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서 글로벌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 대학의 미래를 고민하다

김 총장은 최근 미래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과학을 키워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법대 출신 총장인데 의외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면서 크게 웃은 후 이화여대는 원래 과학을 중시했던 학교라고 힘주어 말했다.

“학교 사료를 보면 전쟁통에 피란을 다니면서도 화로를 돌리며 화학실험을 했던 선배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자연계 교육을 했고요. 일찍부터 과학 교육을 시작한 만큼 국제화도 다른 대학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을 강조한다고 해서 인문학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고 설명했다. 또 과학에 대한 투자가 대학의 장기적인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과학 역량을 높여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하고 연구비를 많이 유치해 재정자립도를 높이면 이화여대의 교육가치를 실현하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과학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한다. 성과는 한참 후에 나온다. 내 임기 내에 성과를 거두겠다는 과욕은 물론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인문사회 및 과학, 그리고 과학 여러 분야 간의 융합을 위한 여건을 잘 갖췄다. 지금 이공계에 투자하는 돈을 인문사회에 돌린다면 이 분야에서 당장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될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과학에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김 총장은 “한국의 노벨 과학상 1호를 이화여대 교수나 학생이 이뤄내면 좋겠다. 방향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자꾸 생긴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면서 김 총장은 미소를 지었다. 꿈을 향한 노력만으로도 흐뭇해서일까.

○ 레지덴셜 칼리지를 꿈꾸다

이화여대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학과와 커리큘럼을 계속 혁신했다. 11개 단과대학과 15개 대학원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성 리더를 많이 배출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박사, 의사 변호사 등 여러 분야의 여성 1호는 이화여대 출신이 휩쓸었다. 역대 여성 장관의 절반, 여성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이화인이다. 최근 국가고시에서도 여풍의 주역이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합격자의 대학별 순위에서 5위 이내를 유지한다.

김 총장은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학교를 더욱 발전시킬 비전을 제시했다.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기초소양과 인성을 겸비한 전인교육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이화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전략. 이를 위해 레지덴셜 칼리지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낮에는 교실로, 밤에는 기숙사로 쓰였던 국내 최초의 기숙학교인 ‘이화학당’의 전통을 살려 신입생 모두가 숙식을 함께하며 리더십 교육을 받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최대 1800명이 이용할 기숙사를 짓는다. 내년 2학기에 200명이 시범적으로, 2015년부터는 모든 신입생이 합숙교육을 받는다.

이화여대에서는 저학년보다 고학년이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학교가 학생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환경이기에 가능하다. 또 예전에는 졸업하면 학교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졸업 후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졸업 후 최소한 10년 동안은 직접 돌보겠다. 19만 동창이 네트워크를 이어가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도록 학교가 뒷받침해서 귀중한 동문이 사회에서 잘 활동하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과학 이화’ ▼

이화여대는 지난해부터 3년간 연구비 100억 원을 투자하는 ‘이화 글로벌 톱 5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세계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 이화여대 제공
이화여대는 지난해부터 3년간 연구비 100억 원을 투자하는 ‘이화 글로벌 톱 5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세계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 이화여대 제공
여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문사회나 어학, 문화예술 분야에 치중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달랐다. 설립 초기부터 이공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전 세계 여대 중 공대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국내 여대 가운데 유일하게 공대와 의대를 모두 가진 대학이다.

이화여대의 역사는 여성을 위한 의학과 과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87년 국내 최초로 여성전용 병원(보구여관)을 설립한 것이 상징적 사건이다.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 여사는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병원에서 한국 여성이 옷을 들추거나 남자 의사와 접촉하지 못해 진료를 못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여성 전용 병원을 설립한 이유다.

보구여관은 여성 의학자를 배출하는 교육의 장이 됐다. 이곳에서 일하던 박에스더(본명 김점동)가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대로 유학을 떠나 한국 최초의 여자 의사가 됐다.

1945년에는 3개 단과대 중 하나였던 행림원에 의학과와 약학과를 신설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의학 교육과 약학 교육을 시작한 곳이다. 그해 12월에는 서울 동대문에 부속병원을 열어 여성 의학도를 위한 실습환경을 갖췄다.

자연대는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1951년에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생물학과를 신설해 전문적인 교육에 시동을 걸었다. 1996년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 공대를 설립했고 2008년에는 신공학관을 세워 거대한 첨단연구단지를 구축했다.

‘과학 이화’의 꿈은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성과를 내면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 화학그룹인 솔베이와 맺은 산학협력 약정이 대표적이다. 솔베이는 2150만 달러를 투자해 특수화학부문 글로벌 본부 연구개발(R&D)센터를 이대 캠퍼스에 내년에 설립할 예정이다. 다국적기업이 국내 대학에 글로벌 R&D센터를 설립한 첫 사례다.

올해는 쟁쟁한 경쟁 대학을 물리치고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단으로 선정됐다. IBS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세계 10대 연구기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정부가 10년간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하는 초대형 국책사업. 이화여대는 세계적인 석학인 게이브리얼 애플리 박사를 영입해 차근차근 준비한 덕분에 주요 사립대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IBS 유치전에서 승리했다.

이화여대는 일찍이 의대와 약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 의료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최첨단 대형병원을 열 계획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단지에 1000병상 이상의 국제병원을 짓기 위한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김포국제공항과 근접한 입지를 활용하고 이대목동병원과 협업해 첨단 고급 병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대학탐방#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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