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 2011년 한국영화 상반기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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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16시 10분


코멘트

●'코메디 영화'의 초강세와 '복고 바람'
●헐리우드에 대항해 견고하게 성장 중인 한국영화

2011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특징은 \'복고\'와 \'코미디\'의 강세로 요약된다. 최고 히트작인 \'써니\'의 한 장면.
2011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특징은 \'복고\'와 \'코미디\'의 강세로 요약된다. 최고 히트작인 \'써니\'의 한 장면.

올해도 벌써 반이 훌쩍 지났네요. 이미 8월이라고요?

우리나라 극장가에는 네 번의 대목(대목)이 있습니다. 주머니도 두툼해지고 시간도 여유로워지는 설, 여름방학, 추석, 그리고 연말입니다. 지금 극장에는 여름방학이라는 대목을 맞아 블록버스터들이 총 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8월 이 무렵이 대목을 두 번 거친 딱 절반이라고 정의해도 무방합니다.

상반기 한국영화 트랜드를 살펴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코미디 영화'의 초강세입니다.

'의형제', '아저씨' 등 액션 스릴러 장르가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와 무척 다른 양상입니다. 상반기 최고 흥행작인 '써니'를 필두로 상위 2, 3위를 기록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위험한 상견례' 모두 코미디 장르에 속합니다. 지난 해 말 개봉해 4위를 기록한 '라스트 갓 파더' 역시 코미디 물입니다. 이 외에도 '평양성', '헬로우 고스트', '수상한 고객들' 등 톱 텐 안에 코미디 영화만 일곱 편 입니다.

살기 팍팍해서일까요? 조폭영화라는 하나의 소재가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고 관객 수 1000만이 넘은 단일 영화가 사회 현상으로 부각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코미디 영화가 상위 흥행 순위를 싹쓸이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각종 자연재해와 유명인들의 자살, 치솟는 물가 등으로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하도 웃을 일이 없으니 극장에서라도 웃고 싶었던 건 저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영호남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코믹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복고'와 '코미디' 강세 트렌드를 입증했다.
영호남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코믹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복고'와 '코미디' 강세 트렌드를 입증했다.

■ 영화 '써니'와 '위험한 상견례'의 복고풍 코미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영화들에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복고' 라는 단어입니다.

중년여성의 여고시절을 그린 '써니'나 지역색을 내세워 웃음을 준 '위험한 상견례' 모두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이나 시크한 패션을 즐기고 4G 와이파이로 지하철에서 뉴스를 검색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절이었지요.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사실 당시의 과장된 패션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스피드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회 모습이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관객들에게는 호소력을 가졌습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중년 관객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했고, 젊은 층에게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기에 한 템포 쉬어가는 듯한 아날로그적인 삶의 모습에 잠시 숨을 고른 관객들 역시 많이 계셨을 겁니다.

의미 있는 흥행작들도 있었습니다. 우선 개봉 첫 주 낮은 스코어를 기록하고도 오히려 상영관을 늘려나간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뭐니뭐니해도 상반기 최고의 '깜짝스타' 입니다.

이 영화의 최종 전국 스코어는 160만. 스타 배우 하나 없고 영화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가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깜짝 놀랄 일입니다. 개봉 당시 업계 내에서조차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영화는 좋은데, 흥행이 되겠어?'

하지만 이 영화는 '움직이기만 하면 대박'이라는 중, 장년 관객층이 극장을 찾으면서 궁극적인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단지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굴곡과 삶의 흐름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따스한 성찰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라고 봅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무척이나 많이 울고,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늘 잊고 살지만, 역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었습니다.


■ 김기덕의 '풍산개'…좋은 영화는 성공한다

얼마 전 개봉했던 '풍산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김기덕 감독이 오랜만에 들고 나온 작품이었지요. 이 영화는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제자 장훈 감독의 '고지전'이 개봉되면서 전국 71만 명의 스코어로 막을 내렸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이에 대해 거대 배급사가 변칙 개봉으로 작은 영화를 죽인다며 또 한번 가시 돋친 비판의 화살을 날렸었습니다.

이 영화 역시 2억 원이라는 초 저 예산으로 제작되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흥행 성적을 올린 상반기 최대 이변작 중 하나입니다. 영화 외적인 논란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흥행을 이끈 것은 영화 자체의 힘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않을 겁니다. 상업영화의 제작 시스템 밖에서 만들어지고도 웬만한 상업영화에 지지 않는 흥행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제시하는 바가 크기도 합니다.

각종 지원금 축소로 몸살을 앓는 듯 보였던 독립영화계도 상반기에는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폈습니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 와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이 각각 1만 관객을 기록했고,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참신한 소재와 실험적인 연출 등으로 독립영화는 늘 상업영화의 자양분 역할을 해 왔는데요, 특히 올해에는 배우들의 발견이 두드러졌습니다. '혜화, 동'에서 절제된 감정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유다인은 다음달 개봉을 앞둔 '의뢰인'에 캐스팅 되어 촬영을 마쳤고, '파수꾼'에서 방황하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던 이제훈은 '고지전'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으며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인 연기자로 발돋움 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상반기 전체 극장 매출은 소폭 감소한 반면,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약 2% 높은 48%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7월 개봉 첫 주말부터 박스 오피스를 독식하다시피 한 '트랜스 포머 3'와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의 성적이 반영되는 하반기에는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대작 트랜스포커3. 한국영화는 헐리우드의 물량공세에도 2011년 상반기 견고한 성장세를 지켜냈다.
헐리우드 대작 트랜스포커3. 한국영화는 헐리우드의 물량공세에도 2011년 상반기 견고한 성장세를 지켜냈다.

■ '퀵' '제 7광구' '활'…치열한 여름방학 전쟁

물론 장훈 감독의 '고지전'과 윤제균 사단의 '퀵'이 선전을 하고 있고, '제 7광구' 와 '블라인드', '최종병기 활' 등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이들 영화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본격적인 하반기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라톤을 소재로 한 '페이스 메이커'를 비롯해 80년대 전설적인 라이벌 투수였던 최동원과 선동렬의 대결을 그린 '퍼펙트 게임', 남북 탁구 단일팀의 경기를 그린 '코리아', 그리고 각각 야구와 경주마를 소재로 한 '투혼'과 '챔프' 등이 현재 촬영 중이거나 개봉 대기 중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33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라든가 전도연과 고현정씨가 각각 출연하는 '카운트다운'과 '미스고 프로젝트', 정통 멜로 영화 '오직 그대만' 등 다양한 영화들 역시 제작 중입니다.

올해 하반기에도 한국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들 모두, 올 여름 지독한 비 피해 때문에 유난히 마음 졸이며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정주현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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